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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의 '엘비스 참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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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의 한낮은 아직도 덥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소식과 이에 분노한 한국인을 다룬 뉴스를 대할라치면 마치 찜통 속에 들어있는 기분마저 든다.

여러분은 아마도 "이 친구 더위 먹었나"라고 생뚱맞아 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고이즈미의 '참배'가 반갑기만 했다. 야스쿠니 신사를 얘기하는 게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전설적인 로큰롤 가수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혼이 쉬고 있는 그의 옛집 '그레이스랜드'를 고이즈미가 6월에 방문했던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엘비스는 나의 고향이기도 한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가 낳은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로큰롤의 황제'가 살던 옛집에 외국의 현직 최고 지도자가 방문할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지 않다.

엘비스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1977년 마흔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엘비스가 숨진 그해 8월까지 그의 옛집에서 1.6㎞가량 떨어진 곳에 살았다. 엘비스가 최고의 명성을 얻기 직전인 54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의 아버지는 밴드에 가입해 엘비스가 섰던 무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처음 서울에 왔던 87년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를 빼고 내가 거리에 운집한 군중을 본 것은 엘비스의 장례식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요절한 엘비스를 추도하기 위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요즘도 8월이 되면 캘리포니아와 호주.일본.영국 등지에서 엘비스의 옛집을 순례하기 위해 팬들이 몰려든다.

87년 나는 서울의 거리에서 군중을 보면서 엘비스의 영혼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고 믿었다. 서울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내가 멤피스에서 왔다고 하면 예외없이 "엘비스 프레슬리"로 맞장구를 쳤다.

최근 멤피스의 지역 사회가 인종주의로 분열돼 있어 나로선 몹시 안타깝다. 멤피스는 엘비스가 살아있던 50~60년대가 전성기였다. 인종주의와 글로벌화로 멤피스는 퇴락하고 급속히 침체하고 있다. 부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나는 멤피스가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로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찜통 더위 말고 서울에서 내가 뭘 보고 고향을 떠올릴 수 있을까. 외지인을 의심하면서도 환대하는 미국 남부의 문화, 바로 그것을 서울에서도 발견했다.

미국 북부 사람들은 수년 이상 멤피스에 살아도 '멤피스 토박이' 자격을 얻지 못한다. 멤피스의 인종주의는 한국의 지역주의, 아시아의 역사 갈등만큼이나 심각하고 오래된 것이다. 이런 분열 때문에 멤피스와 한국, 그리고 아시아는 자기 잠재력을 스스로 사장시키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8월의 삼복 더위를 보내면서 나는 옛날 멤피스의 우리집 뒤뜰에서 가족과 식사하며 아버지가 큼지막하게 잘라 놓은 수박을 먹던 일을 떠올린다. 글로벌화의 충격은 나에게 달콤쌉싸래한 의미로 다가온다. 멤피스 못지않게 나는 한국과 일본을 자주 여행하는데, 한.일 두 나라는 끊임없이 새로운 갈등을 양산하는 듯하다. 글로벌화로 생겨난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와서 보면 한국 정치권엔 반일 감정이 넘쳐난다.

고이즈미는 미국 방문길에 엘비스의 옛집뿐 아니라 멤피스의 다른 곳도 참배했다. 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곳에 세워진 국립인권박물관을 찾았다. 킹 목사가 정치적 이유로 암살된 이후 멤피스는 아직도 옛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서로 갈라설 경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설사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하더라도 뿌리 깊은 적대감을 극복하기 위해 하는 참배라면 나름대로 가치는 있다. 이제 우리 모두 냉정함을 되찾고 평상심을 회복하자.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

정리=장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