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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식 개혁거부… 정통 사회주의노선 고수/알바니아 비상사태설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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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수민족 그리스인 반정부 움직임 나타나
북한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전체주의 공산국가인 발칸반도의 알바니아에도 서서히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알바니아 정부는 11일 제2도시 슈코더르에서 소요가 발생,비상사태가 선포됐다는 소문을 『일부 해외망명자들이 왕정을 복고하려는 음모에 의한 허위조작』이라고 일축하고 알바니아는 소련식 개혁이 필요 없으며 앞으로도 정통 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할 것이라고 재천명했다.
인구 3백만명의 소국 알바니아는 19세기 말까지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1912년 발칸전쟁에서 터키가 패배한 것을 틈 타 독립을 선언했다. 그후 1차 세계대전중 이탈리아에 일시 점령당했다가 대전후 다시 독립,1939년 무솔리니의 침공때까지 독립을 유지했다.
2차대전중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배를 받았으나 44년 독일이 발칸반도에서 철수함에 따라 그해 11월 반파쇼 평의회가 임시정부를 수립,엔베르 호자장군을 수반으로 하는 좌익정권이 성립됐다.
같은 해 12월 최초의 총선이 실시돼 좌익 민주전선이 승리했으며,46년 1월 알바니아 인민공화국이 선포됐다. 공화국 수반에는 호자가 취임했으며,그가 이끄는 알바니아 노동당(APL)이 지금까지 권력을 독점해 오고 있다.
호자는 그후 알바니아의 최고권력자로서 85년 사망때까지 절대권력을 휘둘렀으며,그 부인 네지미에는 현 민주전선 의장으로 아직도 상당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알바니아는 48년 스탈린식 체제를 도입하고 친소노선을 채택,49년 코메콘,55년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소련에서 일어난 반스탈린주의,소련의 경제간섭 등이 호자정권에 위협적 요소로 등장하자 소련과의 관계가 냉각,61년 소련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60년대 들어 중소분쟁이 본격화하자 알바니아는 중국의 충실한 동맹국이 됐으며,68년 바르샤바조약군의 체코 침공때는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소련과의 관계를 완전 청산해 버렸다.
중국과의 관계는 72년 중국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계기로 소원해지기 시작했으며,78년 중월분쟁때는 베트남을 지원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도 단절된 상태에 있다.
알바니아는 70년대 들어 외교적으로 지나친 고립탈피를 시도하고,80년대 들어 서방국가들과도 관계개선을 꾀하고 있으나 고립노선에 대한 근본 입장을 포기하지 않고 반소ㆍ반미,그리고 반개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85년 호자의 사망으로 뒤를 이은 라미즈 알리아 인민회의 간부회의장(국가원수)도 호자의 고립노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알바니아는 동유럽 공산국가중 최빈국이지만 식량은 완전 자급하고 있으며 크롬ㆍ구리 등 천연자원이 풍부,중요한 외화획득원이 되고 있다. 건국이래 철저한 중앙집권적 경제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대외무역은 국가가 독점 관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헌법으로 일체의 외국 차관과 합작회사 설립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같은 경색된 경제운영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ㆍ경제불균형ㆍ기술낙후 등 문제점이 드러나자 87년부터 중앙통제를 완화하고 생산자극을 위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알바니아에는 혹독한 통제정책으로 반체제 운동이 거의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국민들 사이에 지나친 내핍생활에 대한 불만이 높아가고 있으며,특히 소수민족인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반정부적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어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동구의 개혁바람이 알바니아에 곧 미칠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워낙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붕괴도 의외로 빨리 올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 않다.<정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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