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개척, 비약의 상징|1990년은 경오년 말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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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90년. 경오년, 말의 해가 동텄다.
말띠로 치르는 해갈이는 별스럽게 날렵하고 싱그럽다.
충천에 금이 가도록 찌릉찌릉한 그 울부짖음, 마파람에 날리는 갈기의 물살, 날고 솟구치는 그 뜀새…. 꼭 말이 우리에게 달려오듯 경오년, 말의 해가 동텄다. 별다르게 삽상하고 날쌔게 이제 우리들은 해갈이를 하고 있다.
우리들 누구나 해갈이 하는 것은, 해갈이 하면서 마음을 여미는 것은, 그리하여 마음이 사뭇 미쁜 것은 우리들 각자의 삶의 쇄신이 이룩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토함산 석굴암 맞은편, 동해바다에 떠오르는 해돋이 같이 정갈한 자기혁신, 그같이 쇠락한 자기 경신을 다짐하며 해갈이하는 우리들에게 1990년, 경오년은 백마등에 올라 앉아 주홍빛 사령기를 휘날리며 왔다.
채찍 휘젓는 소리, 박차를 가하는 소리, 완연히 귀에 쟁쟁하다.
푸른 초원을 건너는 백마처렴 올 한해를 휘달리고 싶다. 싸움판을 가르는 적토마처럼 한 해를 이겨내고 싶다.
경오년. 말의 해를 맞는 우리들을 위해 말은 그 본래의 모든 값 있는 상징성을 되찾아야 한다. 인류에게 맨 으뜸으로 길들여진 짐승인 말은 인류사, 인류의 문화사를 꿰뚫으며 질주해 왔기 때문이다.
석기시대 벽화에서 이미 우리들은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그것이 인간 문화가 비롯한 첫 신호임을 우리들은 깨닫는다. 인류문화는 말등을 타고 문열이를 시작했다.
개척과 정복이 말과 더불어 성취되었고 모험과 탐색이 말과 함께 이룩되었다. 인간의 영웅성도 말 없이는 제대로 빛을 보았을 것 같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무엇보다 개척과 정복, 모험과 탐색이 한데 어우러진 영웅성의 정화를 말에 붙여 조형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돌진돌파, 약진과 비약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이 말의 형상을 띠고 모습 갖추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이 된 마음이 있고서야 비로소 우리들은 돌파와 약진을 삶의 싸움판에서 성취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말은 성수, 성스런 짐승이었다. 혁거세왕은 백마의 인도를 받아 지상에 내렸고 동명왕은 말을 타고 하늘에 올라 천장, 곧 하늘의 정사에 참여한 것이라고 전해져 있다.고려 때 사람들은 군마대왕이란 이름을 갖춘 노래로 말을 신격화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기에 네발로 뛰고 달리는 짐승이 하고 많은 가운데 오직 말만이 천마니, 용마니 하는 별호를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왕과 관련돼 처음 나오는 신마이야기는 고구려 무신왕3년(서기20년)에 나온다. 그 때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골구천에서 신마를 얻었다.
그 뒤 왕이 부여를 토벌할 때 적군에 포위돼 신마를 잃었다. 그러나 석달후 그 잃어버린 신마는 부여의 말 1백여필을 끌고 다시 고구려로 돌아왔다. 과연 한번 섬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신마였다.
주인에 대한 말의 충성은 우리 옛 얘기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선조 명장 임경업장군이 김자점의 명을 받은 형리의 곤장에 맞아 죽자 마부가 임장군의 준마를 가리키며 『짐승은 무지하니 그 주인이 죽는줄도 모른다』고 했다. 말은 그 마부의 말을 알아들은 듯 여물 먹는 것을 딱 그치고 한번 크게 울더니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신미양요(1871년)때 강화도에서 장렬히 전사한 어재연강군의 말도 그 주인을 따라 스스로 피를 토하고 순사했다 한다. 주인을 저승길까지 충직스럽게 모신 명마들의「의리」였다.
조선조 창업을 기린『용비어천가』를 지은 세종대왕은 태조 이성계가 아꼈던 여덟준마를 당대최대 화가 안견을 시켜 그리게 했다.
그러나 그 『팔준도』는 임진란등을 겪으며 없어지고 한 선비가 그것을 모사해 간직해오다 숙종대에 이르러 화공을 시켜 그 모작을 만들게 했다. 그때 숙종 스스로 그림에 붙인 글을 썼다.
그 글에서 숙종은 특히 위화도회군 때 태조가 탔던 「응상백」의 공로를 크게 일컫고 있다. 조선조 역성혁명의 결정적인 계기에 태조를 태웠던 말이기에 조선조에서는 숭앙받았을 것이다.
이와같이 말은 주인을 충심으로 섬기며 죽음까지 같이 한다. 말은 배신을 모른다. 말은 주인이 떨어지면 절대로 밟거나 달아나는 일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서 주인이 일어 나기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경오년, 말의 해를 맞아 말이 주는 충직성·신뢰성을 배우고 모두가 갈기를 세우고 건강한 2000년대를 향해 질주했으면 한다.
김열규 <서강대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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