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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청산인지… 변명인지”/전씨 증언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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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시민들 “어물쩍 답변”에 실망/TV앞 연휴 길거리 한산/역ㆍ터미널도 인파 붐비지 않아/광주행 예매표 잇단 환불… 전력소비량 급증
온국민의 눈과 귀가 TV방송에 붙잡힌 하루였다.
전두환전대통령의 5공청산 국회증언이 있던 구랍31일 낮 예년같으면 귀성인파로 붐빌 고속도로가 평소보다 오히려 교통량이 줄었고 시내거리는 차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집집마다 TV중계를 지켜보느라 신정연휴 계획을 취소ㆍ연기하는 바람에 연휴때엔 줄어드는 낮시간대의 전력소비량이 평소의 8백만㎾에서 9백만㎾로 늘어났다.
역ㆍ터미널의 귀성객도 한산한 가운데 강남 고속터미널의 광주행은 이날 55%의 예매율에 환불요구가 잇따랐다.
전직대통령의 처음있는 국회증언을 지켜본 시민들은 『얽히고 설킨 매듭마다 시원하게 답변하고 명쾌히 풀어 5공악몽을 씻고 밝은 새해를 맞아 전직대통령이 「피의자」로 국회에 불려 나오는 비극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보였으나,증언실황이 방영되면서 『답변내용이 앞서있었던 청문회 내용에도 못미친다』며 실망하는 반응이었다. 신문사에는 TV중계시간 『증언이 미흡하다』고 항의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잇따랐다.
◇거리표정=전씨의 국회증언이 한시간 늦춰 녹화중계된 이날 각 가정에서 대부분 시민들이 TV를 지켜보느라 서울시내는 정오가 되도록 외출나온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산,이날 서울시내에서 영업하는 택시는 대부분 영업용이었고 개인택시는 거의 눈에 띄지않았다.
개인택시 운전기사 김영인씨(41ㆍ서울 이문2동)는 『보통 일요일에는 오전10시쯤 나와 영업하지만 오늘은 전씨 증언을 보기위해 새벽4시에 나왔다』며 오전10시30분쯤 귀가를 서둘렀다.
이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의 광주행버스 예매상황은 55%로 50개노선중 최저를 기록.
이날 오전8시까지 광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했던 20여명의 승객들은 환불받기도 했다.
광주가 고향인 정동식씨(31ㆍ회사원)는 『오전10시발 광주행표를 예매했으나 전씨의 증언을 보지않고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오후5시30분발 막차로 표를 바꿨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가지는 평소보다 차량통행이 크게 줄어 금남로일대와 충장로는 한산했으며 고속터미널ㆍ시외버스 공용터미널ㆍ광주역 등의 대합실 TV앞에는 고향을 찾기위해 나온 귀성객들이 숨을 죽인 채 증언을 지켜봤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광주문제와 관련된 전씨의 증언이 진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보다 진일보한 사실들이 증언되기를 바라는 눈치.
◇시민반응=회사원 임동익씨(29ㆍ서울 공항동)는 『5공청산을 위한 국회증언인지 5공찬양을 위한 것인지 구별을 못할 정도였다』며 『청문회를 통해 이미 잘못이 밝혀진 부분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 없다」로 일관하는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주부 신은미씨(29ㆍ서울 쌍문동 한양아파트)는 『마치 전씨의 송년연설을 듣는 기분이었다』고 했고,회사원 이재도씨(34ㆍW금속 총무과장)는 『새로운 사실도,알맹이도 전혀 없는 변명에 급급한 증언에 크게 실망했다. 말로만 참회와 반성을 외치면서도 지난번 5공청문회에서의 증인들과 다를 바 없는 무성의한 태도였다』고 했다. 이씨는 『새해에도 여전히 5공청산 시비가 정치적 쟁점으로 남게될 것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공무원 박찬욱씨(36ㆍ서울 잠실동 주공아파트)는 『전씨가 진실을 밝힌다는 차원보다는 자기 변명에 급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특히 일해재단비리와 관련,장세동전경호실장이 사법적처리를 받았는데도 장씨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증언한 것은 우리나라 사법부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백형구변호사는 『질문취지와 어긋나는 경우가 많고 추상적으로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진실을 밝힌다는 차원에서 성의있는 답변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백변호사는 『청문회장의 국회의원들도 온 국민이 관심있게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질서를 지키고 미진한 부분은 보충질의를 활용하는 성숙성을 보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백담사 입구 「전경 장막」 취재 방해/국회주변도 철저 차단 행인들 검문/검찰 비상대기령 만약의 사태 대비
◇백담사∼여의도=전씨는 31일 새벽5시 백담사에서 지프로 7㎞ 내려와 절입구 제2검문소에서 대기시킨 자신의 승용차 서울2 두6759 미색그랜저를 타고 서울로 직행.
전씨는 안경을 쓰고 대통령시절 겨울에 즐겨 차려입던대로 정장에 검정색 코트를 입고 흰목도리를 두른 말쑥한 차림에 담담한 표정이었다.
전씨의 측근과 경호원들은 6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전씨를 수행.
이순자씨는 전씨를 따라 나서지 않고 절에 남아 전씨의 무사증언을 기리는 예불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절관계자가 귀띔.
보도진이 몰리자 30일 밤12시쯤 민정기비서관이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백담사를 보도진에 일시개방하겠다』며 취재진 9명으로 숫자를 줄일 것을 제의. 이에 새벽3시40분쯤 9명의 보도진이 취재차량에 나누어 타고 산사입구에 올라갔으나 산사입구 일주문 1백m 앞에서 경찰들이 통과를 거부,전씨의 거처와 백담사내 취재는 무산.
이에 보도진들이 경비관계자에게 항의하자 전경들이 나서 취재진들은 잡아채고 취재차량앞에 드러눕거나 주저앉아 이동을 못하게 하기도.
전씨가 산사입구를 나오는 과정에서 전경과 보도진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발생.
31일 새벽 전씨의 행렬이 캄캄한 가운데 헤드라이트를 켜고 몰려나오자 보도진이 이를 취재하려 달려들었으나 이미 대폭 증원된 전경들이 카메라를 낚아채고 몸을 붙들고 늘어져 전씨는 「전경의 장막」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전씨의 상경행로는 백담사∼인제∼홍천∼춘천을 거친다음 경춘가도를 지나 88대로를 따라 여의도국회의사당 후문으로 입장.
상경행렬은 경찰선두차에 이어 경호원차와 전씨 승용차 등 6대가 이어졌으며 전경버스 2대와 경찰사이드카가 뒤를 따랐다.
전씨의 경호원들은 취재차량이 전씨 차를 추적하자 보도진을 향해 기관총을 들이대며 쫓아오지 못하도록 위협하기도.
31일 오전5시55분쯤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에서 경호차량인 서울3 가3250 흰색 로열살롱승용차 뒷자석에 탄 30대 경호원이 중앙일보취재차가 전씨 차를 바짝 뒤쫓으려하자 차창밖으로 총신이 짧은 기관총을 내밀고 20여분간 사격자세를 취했으나 계속 사진을 찍자 체념한 듯 차속으로 들어갔다.
전씨 일행을 태운 차량은 오전8시45분쯤 미금시 도농동 검문소를 통과,광장동 워커힐 순환도로를 따라 서울에 들어섰으나 경호차량은 백담사출발 당시보다는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차창을 엷게 선팅한 승용차밖으로 보이는 전씨의 표정은 시종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시무룩했다.
전씨는 차가 서울로 들어서자 1년여만의 서울 풍경이 새삼스러운듯 워커힐과 한강강변로 등을 두리번 거렸다.
전씨는 국회에 도착하기 전까지 시종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앞좌석에 동승한 수행원과 간혹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나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이댈때면 자세를 고쳐 바로앉는 모습을 보였다.
전씨 승용차는 경찰 사이드카 8대의 호위를 받으며 시속 80㎞의 속도를 유지,국회의사당으로 향했으며 5대의 승용차에 나눠 탄 장세동전안기부장 등 측근들이 전씨 차를 앞뒤에서 호위했다.
한편 경찰은 전씨 차를 뒤쫓는 보도차량 30여대를 따돌리기 위해 순찰백차 2대로 천호대교남단 올림픽대로 진입다리를 10여분간 가로막아 취재진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또 전씨 일행이 국회로 향하는 동안 올림픽대로 노량대교에서는 전씨 일행과 사이드카ㆍ취재차량 등 50여대의 곡예운행행렬에 마주오던 승용차들이 구경을 하려고 차를 급히 세우는 바람에 승용차와 택시 등이 3중충돌사고를 빚기도 했다.
◇경찰경비=경찰은 31일 오전8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주변을 포함한 여의도전역에 30개 중대 4천5백여명의 병력을 배치,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은 이날 대학생 및 재야단체가 기습점거 또는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국회내부에 4개 중대로 경비조를 편성하고 외곽에 12개 중대를 배치했다.
경찰은 또 여의도 KBSㆍMBC,문래동 서울지검 남부지청,민정당사 등 4개 주요기관에도 4개 중대 6백여명을 배치하고 부근을 지나는 차량과 행인을 상대로 철저한 검문검색을 벌여 시위 및 점거예상자 전원을 연행키로 했다.
◇검찰표정=5공비리에 대한 사법처리를 담당했던 법무부와 검찰은 관계자들 대부분이 정상출근해 TV시청과 일선 보고를 통해 증언내용이 수사결과와 다른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는 모습.
또 전씨 친ㆍ인척과 전직고위관리의 권력형 비리 등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30여명의 전국 각 검찰청 검사들에게는 비상대기령을 내려 증언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돌발사태에 대비.
한편 법무부는 이날 오전 전국 검찰에 경비근무를 철저히 할 것을 지시하는 전통을 내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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