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주 4·3사건은 무장봉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민주항쟁이냐 좌익폭동이냐를 놓고 진보와 보수 진영 간에 논란을 빚어온 '제주 4.3사건'이 무장봉기로 최종 규정됐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는 15일 전체회의를 열어 '4.3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일으킨 무장봉기가 발단이 됐다. 단, 강경진압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냈고 다수의 양민이 희생됐다'는 내용의 진상보고서를 확정했다.

위원회는 '산간 마을 거주자는 모두 적이라는 전제 아래 벌인 작전이었다'는 내용을 '산간 마을 거주자에게 통행금지를 포고하면서 이를 위반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총살에 처하겠다는 작전이었다'고 바꾸는 등 일부 표현을 순화했다.

진압작전을 너무 거칠게 표현했다는 군(軍).경(警) 측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한광덕 전 국방대학원장, 이황우 동국대 교수, 유재갑 경기대 교수 등 군.경 측 추천위원 세명은 이날 위원회의 보고서 채택에 반발, 위원직을 사퇴했다.

韓위원은 "우리가 제시한 중요한 사실은 반영하지 않은 채 지엽적인 문구만 수정한 것으로 보고서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위원회에서 군.경 측 위원은 "공산당의 활동은 덮어두고 군.경에 의한 희생만 부각했다"며 더 검토하자는 반대의견을 냈지만 대다수 위원이 찬성해 표결 없이 보고서를 채택했다.

진상보고서 작성 실무를 맡고 있는 제주 4.3사건 처리지원단은 공산당의 활동이 빠져 있다는 일부 군.경 측 위원의 주장에 대해 "보고서에 남로당의 주민 살상행위 등이 기재돼 있다"고 반박했다. 위원회는 진상보고서가 채택됨에 따라 ▶정부의 사과표명▶4.3평화공원 조성▶생활이 어려운 유가족의 생계비 지원▶추모기념일 제정 등 희생자와 유가족의 건의를 각 부처와 협의해 추진하기로 했다.

제주 4.3사건(1948년 3월 1일~1954년 9월 21일)은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연계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이 희생된 것이다. 당시 2만5천~3만명의 인명피해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정철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