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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질서 재편 남의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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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0년대의 국제정치는 가위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만큼 평화공존과 화해의 방향으로 급전되었다.
동서 이념을 둘러싼 팽팽한 양극체제와 핵무기 경쟁의 심화로 인한 공포의 균형이 세계를 무겁게 짓눌렀던 초기의 분위기는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다가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회오리바람으로 가속됐다.
이제 80년대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이 변화는 동구에서 철의 장막을 허물어뜨리고 이념보다는 국가이익 우선의 보용 주의가 국제관계의 새로운 동기로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세계는 이제 이와 같은 거대한 변혁의 물결이 몰고 온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급격한 변화에 수반하는 혼란과 분쟁의 가능성을 동시에 안은 채 90년대의 새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폭과 깊이는 80년대 초의 세계를 되돌아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대결로 시작된 80년대>
80년대 미국은 이란 인질 문제로 호메이니와 1년 넘게 준전시 상태에 놓여 있었고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을 기습 침공하여 80년대 국제질서의 불안한 출발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란-이라크전쟁 발발로 페르시아만의 긴장이 고조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또다시 가격 폭등을 주도, 서방경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미국에선 공화당의 매파인 레이건이 등장하여 소련의 브레즈네프와 함께 경쟁적으로 군사력경쟁에 열을 올렸다.
이 같은 동서진영간의 냉전 분위기를 틈타 영국군은 포클랜드에서, 이스라엘 군은 레바논에서, 미군은 그레나다에서 전운을 일으켰고 소련군 또한 베트남의 캄란기지를 확보, 태평양과 멀리 인도양까지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 냉전체제의 두 주역이던 소련과 미국 땅에서 각각 개최 됐던 두 차례 올림픽은 미소가 서로 보이콧운동을 주도하는 바람에 반쪽대회로 전락하면서 순수한 스포츠마저 강대국 정치놀음에 이용당하는 악례를 남겼다.
강대국의 끝없는 군비경쟁의 여파로 지구촌 곳곳에선 그들의 대리전이 꼬리를 물었지만 편싸움에 만 익숙해진 각 국은 핵무기의 공포나 산업화로 인한 대기오염과 생태계파괴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환경문제 같은 데는 소홀 할 수밖에 없었고 문란한 성 질서로 죽음의 병 AIDS가 세계 1백40개국으로 퍼져나가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대립과 갈등으로 불안한 출발을 보였던 80년대의 국제 정세는 85년 봄 소련에서 개혁의 기수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기 시작했다.

<관용주의로의 혁명>
혁명2세대인 그는 경직된 일당독재 체제나 미국과의 끝없는 군비경쟁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소련 경제는 파탄을 면치 못할 것임을 인식하고 이러한 판단을 자신의 국내외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이다.
소련군의 체코·아프가니스탄 침공은「명백한 오류」이며 스탈린 식의 무자비한 권력 남용은「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규정지은 그는 볼셰비키혁명 이래 최초로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참여폭도 넓혀나갔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몰아붙이던 레이건 미대통령과의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대담한 평화제안을 내놓아 미소간의 전략핵무기 50% 감축 안에 합의했고 부시와의 몰타 정상회담에선 전후 44년 간 세계를 지배해온 동서 냉전의 산물인 얄타체제의 종식선언이 나왔다.
개혁을 통해 공산주의의 재활을 희구하던 고르바초프는 동구권지배가 소련의 개혁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 철의 장막을 과감하게 거둠으로써 거대한 동구개혁의 물꼬를 터 놓았다.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시작된 동구의 개혁 열풍은 동독·체코·불가리아로 확산됐고 끝내는 일당독재의 철옹성이던 루마니아를 강타, 김일성과 함께 개인숭배와 족벌체제를 구축해온 차우셰스쿠 일가를 몰락시켰다.
이 같은 현상은 낡은 이데올로기의 속박에서 벗어나 빵과 자유를 갈구하는 동구인들의 엄숙한 인문선언인 동시에 전혀 새로운 국제질서의 태동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같은 변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흐름이 계속 순탄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을 아울러 경계하고 대처 해야한다.
왜냐하면 소련이 허용한 동구의 민주화가 소련으로 역수입되어 국내개혁이 자체의 힘으로 확산될 때 개혁에 일정한 한계를 두려는 고르바초프는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려 급진과 반동 어느 쪽으로도 급회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중국의 차례>
한편으로는 소련의 제국판도가 와해의 위기에 봉착할 때 스탈린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 그 책임을 추궁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구체적 결실이 서방세계 수준의 물질적 풍요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민중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의 공산국가들이 민중혁명을 성공시키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다행스럽게 보면서도 그 전도를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이 혁명은 완결된 것이 아니다.
아시아 쪽의 상황은 더욱 우려된다. 공산세계를 묶어준 이념의 틀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정통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문 사태이래 중국의 노인 지도자들은 과거 식으로 변혁의 물결을 막으려하고 있고, 북한도 오히려 체제옹호의 자세를 더욱 굳히고있다.
그러나 바웬사가 지적했듯이 아시아의 공산국가들도 동구의 선례에 따라 개혁을 하든가, 아니면 루마니아와 같은 혁명을 겪든가 양자택일의 궁지에 몰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북한동포들의 안녕과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위해 북한도 개방과 개혁 쪽으로 빨리 선택하게 되기를 바라며 정부의 대북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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