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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공연축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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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8월이 무색하리만큼 쌀쌀한 날씨.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이때 걸음을 멈춘 한 사람, 노란색 007 가방을 땅에 내려놓더니 갑자기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하나 둘 주변에 행인이 모이자 본격적인 쇼를 시작한다. 꼬마를 불러내 구수한 입담을 과시하고, 봉 다섯개를 공중으로 훌훌 던지며 놀더니 이내 외발 자전거에 몸을 싣는다. 삽시간에 수백여명으로 불어난 관객, 거리는 그를 위한 그럴싸한 무대로 변한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도시 에든버러. 이곳의 인구 50만명은 여름만 되면 두배로 늘어난다. 필름.재즈.서적 등 갖가지 페스티벌로 지구촌의 손님들을 받는 것. 그 중에서도 60년 역사의 프린지(fringe) 페스티벌은 규모와 역동성에서 가장 돋보이는 축제다. 실험과 흥행, 들뜸과 사색이 절묘히 어우러진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 축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현장을 3박4일간 들여다 봤다.

#한류, 순풍 vs 역풍

지구 반대편의 에든버러 축제가 한국 공연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1999년. '난타'가 이곳 무대에 오른 뒤 호평에 힘입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자 에든버러는 약속의 땅이 되었다.

올해도 에든버러에 공식 출품한 한국 작품은 모두 7개. 그 중 선두주자는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비언어극) '점프'다. 이미 지난해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고 이젠 에든버러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17일(현지시간) 에든버러에서 가장 크다는 어셈블리홀(740석) 극장은 관객들로 꽉 찼다. 태권도와 쿵후 등 아시아의 무술이 코믹한 스토리에 녹아들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고,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공중 돌기엔 탄성이 함께 했다. 이날 공연도 예외없이 기립박수로 마무리가 됐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한 관객은 "지난해 보고 온 친구들이 '너무 웃겨 정신이 없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이제야 알겠다"라며 흡족해 했다. 어셈블리 극장 루이스 샨타 프로듀서는 "4일부터 시작된 '점프' 공연은 평균 유료 점유율 80%를 넘기며 페스티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히트작이다. 내년에도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밖에 스트릿 댄스 공연 '묘성'과 인형극 '코리아 판타지' 등도 별점 3~4개를 받으며 선전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론 '한여름 밤의 꿈' '무무' 등이 출품했던 지난해에 비해선 수준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 페스티벌 참관 중인 춘천마임축제 부예술감독 최석규씨는 "에딘버러 출품작이란 타이틀이 홍보 수단이 되면서 간혹 '묻지마 에든버러행'을 시도하곤 한다. 출품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충분한 준비를 해야 성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축제 vs 시장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장은 모두 261개. 걸어서 20분 남짓이면 오갈 수 있을 만큼 한 군데에 모여 있다. 본래부터 극장이었던 곳은 10개 미만. 평소엔 학교.교회 등으로 쓰이다 축제만 열리면 무대로 바뀐다.

그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극장은 무용.신체극 전용 극장인 오로라 노바. 이곳에선 세계 공연계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실험성 높은 공연이 여러편 올라갔다. 특히 이탈리아의 '카타클로(Kataklo)'는 테니스.스키.축구 등 스포츠 종목을 몸으로 표현해 내는, 빛나는 아이디어와 예술성으로 관객 몰이에 성공한 작품. 영국의 '히스테리아', 러시아 데레보 무용단의 '켓잘'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최근의 아트 서커스 경향을 거부하는 듯 천막 극장에서 유럽 중세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철저히 아날로그식으로 공연되는 웨일스의 서커스 '불멸(Immortal)'도 호평을 받았다.

몇몇 실험작에도 불구하고 페스티벌의 대세는 코미디물이 장악한 상태. "초창기의 도전 정신이 거세된 채 돈 되는 작품 올리기에만 급급하다"란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폴 거진 집행위원장은 "우린 선별하지 않는다. 어떤 작품에나 오픈돼 있다. 그것이 '프린지 정신'이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공연자와 프로모터를 연결시켜 주는 '아트 마켓'(arts market) 역시 페스티벌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예술과 상업성 혹은 축제와 시장이란 상반된 두 개의 요소를 함께 공존시키려는 에든버러의 행보는 지속될 전망이다.

에든버러=최민우 기자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1947년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의 주변부(fringe)에, 본 행사에 초청되지 못한 작은 공연 단체 8개가 자생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시작됐다.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공연 예술계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된다. 올해엔 1800여개의 작품이 참가, 4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전세계에서 몰려오는 관람객은 대략 40여만명. 7500만 파운드(약 1355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조직위원회측은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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