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이창호의 우주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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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3국>
○ . 왕 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이영구 5단

제3보(32~43)=32로 꼿꼿이 섰고 33으로 파고들었다. 백은 중앙으로, 흑은 귀로. 마치 정해진 운명이라는 듯 두 사람의 행보는 단호하다. 내심으론 어찌 불안이 없었을까. 이처럼 밸런스가 깨진 극단적인 노선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다. 중앙을 에워싸는 세력 바둑이란 수박이 쪼개지듯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고 네 귀를 차지하는 철저한 실리바둑은 가뭄을 만난 이파리들처럼 서서히 말라비틀어질 수 있다.

"그래도 실리가 덜 불안하지. 일단 현찰을 챙기고 있잖아."

서봉수 9단의 말이다. 바둑이나 인생이나 주머니 속의 현금은 안도감을 준다. 화려함이나 비전은 없지만 꽉 움켜쥐면 새나갈 일은 없다.

이창호 9단이 36을 두었다. 허공 한가운데 돌이 하나 떨어진 느낌이다. 소위 '우주류'다. 좌변과 하변 세력을 배경으로 광막하고 공허한 중앙에 울타리를 치려 한다. 이영구 5단은 37로 멀리서 견제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중앙은 약점이 많으니 아직 서두르지 않는다. 흑은 쉽고 백은 무한히 어렵다. 이제 이창호는 어디를 둘 것인가.

38이 놓인다. 하아! 하고 탄성이 터진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수. 그러나 하도 느릿하고 담담해 어딘지 모르게 심오한 느낌을 주는 수. 확실하게 울타리를 친다면 '참고도' 백 1 쪽이 나아 보인다. 흑 2로 오면 백 3으로 거대한 운동장이 완성된다. 하지만 흑 4가 놓이면 우상 일대에 흑이 부풀어 오른다. 상변이든 우변이든 어느 한쪽이 커진다면 백은 어렵게 된다.

흑 43. A를 예상했지만 이영구는 한발 늦췄다. 그는 형세를 좋게 보는 게 분명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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