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형의 감옥과 『사이코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해가 저물고 있다. 아니 한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나간 10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권위와 압제의 길고 긴 세월의 터널 끝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대가 어떠했고 살아갈 시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저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지난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고 다가올 시대를 어떤 모습으로 설계해야 할까.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철학서와 한편의 소실이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가로 꼽히는 미셸 푸코는『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 이라는 그의 역저에서 권력의 형성과 장치를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하고있다.
나환자, 정신범자의 격리수용소로 시작된 초기의 감옥이 회개 소와 감화 원의 형태를 거쳐 현대적 의미의 감옥으로 정착되는 시기는 19세기였다. 새롭게 등장하는 권력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낡은 체제와 반체제의 요인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공간으로서 벤담 (Bentham)의 원형 감옥, 파놉티콘은 현대적 의미의 상징적 감옥형태가 될 뿐만 아니라 권력장치의 기본구도가 된다.
거대한 감독의 원형 중심에 감시소를 설치함으로써 수형자가 있는 방에서는 중심의 감시 시설이 보이지 않지만 수형자는 언제나 감시의 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비록 중앙감시소의 내부 가령 비어있는「공허한 중심」이라고 해도 수형자는 그 보이지 않는 감시의 방, 감옥의 규율을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의 사고와 행동을 감시자의 뜻에 따라 속박하게 된다.
절대권력이 사회전체를 효과적 규율의 대상으로 삼으려할 때, 감옥의 체제는 사회전체로 확대되고 그 사회의 중앙에 사회전체를 감시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의 통제기관인 중앙감시소가 세워진다. 감옥의 중심부인 절대권력의 지시에 따라 삶의 규율공간이 배정되고 행위는 통제되며 계획된 훈련과 지시에 따라 사회의 구성원은 수형자처럼 움직인다. 절대권력이 사회전체를 원형 감옥인 파놉티콘의 감시망으로 뒤덮을 때, 그 사회는 금제의 공간, 압제의 사회가 되어버린다.
80년대의 끝자리에서 지난 10년의 한 시대를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왜 굳이 음울한 감옥 이야기를 끄집어내야만 하는가. 필자 개인의 좁은 시각임을 전제로 하고서 80년대를 회고할 때 그 전반부는 원형의 감옥 속에 중앙감시소를 구축하는 시기였고 나머지 후반부는 해체된 권력, 금제된 사회의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분열과 갈등의 시기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80년대의 첫해는 광주의 5월로 시작되었다. 광주의 유혈극이 시민의 포도 화에 기인했던 것인지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서 비롯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애당초 불법한 권력의 의도된 계획이었던 지를 새롭게 따지지 않더라도 광주 유혈극 하나만으로도 불법정권이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하기에는 충분했고 사회전체를 감시와 처벌의 구도로 장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랑자와 교사가 한꺼번에 끌려갔던 삼청교육대와 복지 원의 감금시설, 수백 명의 공직자와 언론인들이 영문모른 채 거리로 쫓겨났던 광기 어린 감시와 처벌의 시절이었다.
금제된 공간이 6월 항쟁으로 무너지면서 절대권력이「공허한 중심」임이 확인된 80년대의 후반부는 권력의 중심이 해체되는 갈등과 대립의 시기였으며 또 다른 형태의 권력중심을 구축하려는 집단과 계층 간의 욕구분출이었다. 통일의 함성이 거리마다 쏟아지고 노동의 해방,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외치는 고함으로 가득했던 한 시절 이기도 했다.
작가 전상국이 최근 발표한 중편『사이코시대』(동서문학11월호)는 금제된 틀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규범이 한 사회를 얼마만큼 광적인 적대관계로 몰아가는가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통일과 민족과 역사에 미친「땡삐」와 기만적 사회규범 위에서 자동차와 여자를 번갈아 바꾸면서 살아가는「만제」, 이두사람의 폭력 한가운데서 약국을 경영하며 살아가는 소시민 「현세」. 이들 3명이 보여주는 인간상은 80년대가 강요했던 한시대의 전형으로 부각된다.
소시민 현세에게 있어 땡삐와 만제는 똑같은 폭력으로 존재할 뿐이다. 금제된 사회 속에서 적대하는 두 인간상은 똑같은 사이코일뿐이다. 금제된 공간을 깨뜨리려는 땡삐의 도전은 그를 강금 하는 규범사회의 고삐를 더욱 강화시켜줄 뿐이다.
금제의 벽을 허물기 위해 짐승의 길을 걷는 땡삐와 금제의 규범 위에서 배부른 돼지의 길을 걷는 만제, 두 사람의 양극화된 폭력사이에서 속수무책의 절망감에 빠지는 소시민 현세의 모습은 80년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니었던가.
감시와 처벌,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진 두 모습이 범존 했던 80년대가 저물고 있는 지금, 정치권력의 위기, 경제의 위기, 도덕과 교육의 위기는 저물지 않은 채 다음 시대로 넘겨지고 있을 뿐이다.
4인의 정치가가 한자리에 모여 과거를 청산하는 대타협을 했다해서 모든게 청산될 수가 없다.
불법한 정권이 설치했던 금제의 틀을 어떻게 청산하고 그 자리에 어떤 형태의 규율을 국민적 합의로 채워 넣느냐에 따라 한 시대를 광기의 역사로 몰아갔던 원형의 감옥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타율과 광기가 아닌 자율과 이성이 사회적 규범으로 대치되면서 공감과 합의로 이룩되는 새로운 규율이 이 사회를 지배할 때만이 광기의 시대는 정산되고 이성의 시대는 개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라야 비로소 광기의 시대가 빚어놓은 땡삐와 만제라는 폭력의 인간형은 사라지고 기죽어 살던 소시민 현세도 어깨 펴고 살 새날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