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와 나는 한 번도 말을 해보지 못했다. 서로 얼굴을 똑바로 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는 내가 애총이 있는 숲길을 지날 때 자주 나타났다. 어떤 날은 고구마 몇 개를 길 가운데 놓아두고 달아났고 감이나 밤을 놓고 갈 때도 있었다. 학교 갈 때 숲 속 나무 아래나 수풀 사이에 숨겨 놓았다가 집에 오는 길에 찾아 놓아두는 것이었다. 가끔 아이들 사이로 날 몰래 쳐다보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나 혼자 있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그 아이가 눈에 띄었다. 소나무 뒤에 숨었다가 달아나기도 하고 누런 보리밭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나무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쯤이라고 기억하는데 그 아이가 전학을 간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남녀가 교실을 따로 썼는데 그 아이는 바로 옆 반이었다. 그 아이가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날. 어떻게든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쉬는 시간마다 옆 반을 기웃거렸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에 복도에서 그 아이를 보게 되었다. 여전히 검은 옷에 하얀 칼라를 단 깨끗한 모습이었다. 내가 우연인 것처럼 그 아이에게 다가갔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아이의 복도 청소가 끝나가는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더러운 물이 흐르는 걸레를 그 아이의 등에 던졌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놀라 소리쳤다.
그 아이는 놀라 돌아서긴 했지만 엉거주춤 서 있기만 했다.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잠깐 내 얼굴을 보는 듯하다가 그냥 달아나 버렸다. 화라도 내기를 바랐는데 끝내 그 아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버리고 말았다.
어디서 우연이라도 꼭 한번 그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때 우리는 무슨 사이였을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로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아이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임연화(52·서울 상계동·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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