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일 어선에 총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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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의 어선이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북방 4개 도서 부근 해역에서 러시아 국경경비대의 총격을 받아 선원 1명이 사망했다.

일 언론에 따르면 16일 오전 7시40분쯤 홋카이도(北海道) 네무로(根室) 앞바다의 가이가라지마(貝穀島) 부근 해역에서 일본 어선 '제31 깃신마루(吉進丸.4.9t)'가 러시아 국경경비대에 나포됐으며 이 과정에서 총격을 받아 승무원 4명 중 갑판원 모리타 미쓰히로(盛田光廣.35)가 사망했다.

어선은 러시아 측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북방 영토 주변에서 일 어선이 러시아 측의 총격을 받아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1956년 10월 이후 50년 만이다.

일 수산청에 따르면 가이가라지마 주변은 러시아 측이 주장하는 영해의 경계선에 가깝다. 러시아와 일본의 어업협정에 따르면 러시아가 주장하는 영해 내에서 일 어선에 의한 문어.대구의 조업은 허용되나 게잡이는 전면 금지돼 있다.

따라서 '제31 깃신마루'가 이곳에서 불법으로 게잡이 어업 중 러시아 경비대에 들켜 도주하다 총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러시아 측은 "어선을 조사한 결과 게 30kg, 문어10kg 등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경경비국은 "어선이 아키유리(秋勇留) 섬 주변 해역에서 발견돼 러시아 측의 정선 명령을 무시하고 서쪽으로 도주했다"며 "수차례에 걸쳐 신호탄을 쏘았지만 멈추지 않아 경비정에서 고무 보트를 내려 자동소총으로 어선의 앞뒤 부분에 경고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 언론에 따르면 총격이 이뤄진 현장이 가이가라지마 부근의 일본 영해 안쪽이었다는 정보도 있어 두 나라간 외교분쟁으로 이어질 공산도 있다. 일 정부는 총리 관저에 연락실을 설치하는 한편 주일 러시아 임시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엄중 항의했다.

러시아 측은 이날 오후 "수상한 선박이 아무런 표시도 없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러시아 영해를 침범해 경고사격한 것"이라며 "다만 사망한 선원의 시신과 나머지 승무원은 조만간 일본에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북방 영토 주변 해역에서는 93년부터 96년 사이 러시아의 경비정에 의한 총격사건이 잇따라 발생, 긴장이 고조됐으나 98년 두 나라가 안전조업협정을 체결한 뒤로는 별 충돌이 없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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