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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아키노 권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7일 의회에 비상대권을 요구한 것은 거의 진압된 것으로 보이는 군사 쿠데타의 충격이 정치문제로 비화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아키노 자신이 마르코스의 철권 정치하에서 비상대권의 최대 피해자 중의 하나였던 점을 상기하면 필리핀의 최근 정정은 86년 2월 민주혁명 이전 시기의 상황으로 암전하는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아키노는 그만큼 이번 쿠데타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감행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태」로 현재의 진행상황을 판단하고 있다.
이번 군사 반란 사태는 7일 마닐라 시내 중심가를 점거하고 있던 반군 잔당들이 보니파시오 기지로 복귀함으로써 1주일간에 걸친 유혈극이 일단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필리핀 제2의 도시인 세부시의 막탄 공항을 점거하고 있는 반군들이 아키노의 사임을 요구하며 투항을 거부함으로써 이번 쿠데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은 물론 자칫 재연될 소지마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키노는 결국 집권 3년 반 동안 무려 6번의 쿠데타를 헤쳐 나오는데 급급했을 뿐 경제·사회적 문제에는 미처 손쓸 겨를조차 누리지 못해온 셈이다.
더구나 이번 사태는 배후가 드러남에 따라서는 아키노 정권의 내부관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아키노의 권좌 자체를 위태롭게 할 위험성도 안고 있다. 이밖에도 반군의 도전을 미국의 개입으로 일단 「쉽게」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이에 따른 여론의 호된 질책은 아키노의 「정치적 부채」로 남게됐다.
미군 개입 직후부터 현지 언론들은 『아키노가 새로운 외채를 끌어들였다』는 등의 비아냥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군은 반군들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번 쿠데타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라는 게 현지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반군 지휘부는 『우리가 원대 복귀하는 것은 필리핀 경제가 파탄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 반군들이 점령지인 마카티가로부터 기지에 이르는 5km의 행렬은 무장상태였을 뿐 아니라 정부군의 보호도 있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처럼 정부 전복을 기도했던 반군들마저 걱정할 만큼 필리핀 경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올 들어서만 13%의 인플레를 기록한 필리핀 경제는 이번 사태로 외국자본 등의 유치에 있어 더욱 타격을 받게 됐다.
특히 고질화되어온 정부 고위관리들의 부정부패 척결에 실패함으로써 아키노 정부는 무능을 드러내는 한편 지지기반이 되어온 일반 서민들의 신망을 저버린 상태다.
이 같은 역경 속에 아키노는 라우렐 부통령, 엔릴레 상원의원 등 직업정치인들로부터의 정면도전에 직면,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특히 아키노와 불편한 관계로 알려진 라우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신과 아키노가 동반 사퇴하고 의회를 해산, 총선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여 그의 정치적 야심을 노골화했다.
이 같은 필리핀 국내 정세의 혼란 때문에 현지 외교소식통들은 물론 필리핀 국민들마저도 아키노가 남은 2년여의 임기를 무사히 채울 지에 대해 강한 회의를 갖고 있다.
아키노 정권의 장래가 이처럼 불투명해진 것은 이번 쿠데타 기간 중 절대 다수 국민들이 아키노 정부에 보여준 냉담 반응에서 분명해진다.
「피플 파워」라는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출범한 86년의 상황과는 딴판이 된 것이다.
이번 쿠데타 발생 직후 대국민 성명을 통해 『합법적인 정부인 아키노 정권을 지키는데 온힘을 쏟자』고 호소했던 필리핀의 정신적 지도자 하이메 신 추기경마저도 사회전반에 걸친 「철저한 개혁」을 아키노 정부에 요구, 아키노 정권이 처해있는 현주소를 실감케 했다.
결국 아키노 정부는 등을 돌린 민심을 다시 끌어 모으기 위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군부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그의 앞으로의 존립기반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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