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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굿바이 레닌'서 배우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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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3년이 지났다. 옛 동독지역에선 과거를 그리워하는 오스탈지아(독일어로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와 향수를 의미하는 노스탈지아의 합성어)가 확산되고 있다. 오스탈지아 정서는 올해 개봉된 볼프강 베커 감독의 영화 '굿바이 레닌'에 잘 나타나 있다.

동독의 열혈 공산당원이자 교사인 크리스티아네는 베를린 장벽 철거를 주장하는 젊은이들의 시위를 보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8개월 후 의식을 되찾는다. 장벽과 함께 사회주의 동독은 사라진 뒤였다. 아파트 창으론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의 커다란 선전문구가 들어온다.

하지만 아들 알렉스는 이런 격변을 어머니 크리스티아네에게 알릴 수 없었다. 어머니가 조그만 충격에도 쓰러질 수 있다고 의사가 경고했기 때문이다. 알렉스는 어머니의 아파트를 동독 시절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동독 시절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급기야 동독의 발전과 서독의 붕괴를 담은 TV 뉴스를 만들기에 이른다. 동독시절 서민들의 생활상이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되살아난 것이다. 베커 감독은 '나의 첫사랑은 아직도 동독'이라고 여기는 옛 동독인들의 절절한 마음을 영화에 담은 것이다.

오스탈지아는 다른 곳에서도 있다. 비타콜라는 동독시절 음료수지만 요즘 한창 인기다. 판매실적이 펩시콜라를 제쳤고 코카콜라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옛 동독 인기 록밴드의 노래를 종일 연주하는 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품만을 내건 전시회가 인기다.

오스탈지아는 옛 동독인들의 심각한 소외감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통일 후 1조달러(약 1천2백조원)를 퍼부어도 옛 동독인의 생활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 평균 실업률은 18%에 달한다. 그들은 통일 독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삶을 바쳐온 과거 체제와 가치가 무의미해지는 좌절을 맛봐야 했다. 오스탈지아는 이런 현상에 대한 반동인 것이다.

이제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날에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이 중에서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나온 문제점들은 모두 검토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 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노르탈지아(노르는 북을 뜻하는 독일어 노르트의 준말)가 형성될 것인가. 현실적인 통일 방법으로 한국이 북한을 흡수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예컨대 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해결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북한의 경제개혁이 제대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은 정치지도자의 '개혁'뒤 단계적으로 경제개혁이 시작됐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毛澤東) 노선을 거부함으로써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북한에 이런 중국식 경제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다. 김정일을 '개혁'한다는 것은 체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체제 붕괴 후(통일 후)에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우수한 북한 인재들을 외부와 접촉하게 함으로써 통일에 대비한 예비지도자로 육성해야 한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와 재일 조총련, 옌볜(延邊)자치구의 지도자들 가운데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둬야 한다. 여기엔 반드시 재계 지도자들이 포함돼야 한다. 동독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경제치(經濟癡)였다.

한국은 통일 후 기업과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가 절실할 것이다. 이 중에서도 일본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족들은 중요한 자원이다.

오스탈지아는 한편으론 세계화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다. 세계화 과정에서 버려졌다는 무력감과 세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공포감이 숨어 있다. 경제원조만으론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이들을 끌어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노스탈지아의 반대말은 오직 희망뿐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大記者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