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방된 동독 환투기 "골머리"|동서독 화폐 환율차 벌어지자 성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국경전면개방 이후 동독이 국제적인 환투기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국가보조금으로 인해 값이 싼 동독의 생필품이 서독으로 밀반출 돼 서독 안에 동독물건만을 전문 취급하는「벼룩시장」이 성시를 이루고있다.
이 때문에 동서 양독에서는 벌써부터 국경개방 이후『서독에 의한 동독경제의 마비가능』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독마르크화를 제외하고는 주요 서방국가의 화폐, 이른바·하드 커런시(경화)와 교환이 되지 않는 동독마르크화는 동독 경제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서독마르크화와 공식적으로는 1대1로 교환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폐 가치를 고려, 국경개방 전까지는 서독은행에서 1대8에서 1대10으로 교환됐다.
그러나 국경 개방후 불과 2주일만에 암시장에서 1대30에 거래되는 등 동독 마르크화의 가치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전에는 동독에 들어가는 사람은 서독인을 포함, 하루 25마르크씩을 의무적으로 동독화폐로 교환해 써야 했는데 입국 전 서독암시장에서 미리 동독 마르크를 환전해 갈 경우 종전의 30분의1밖에 돈(경화)이 들지 않게 된 것이다.
굳이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동독인의 서독출입이 자유로워진 이때 동독현지에서 값이 싼 아동복·칫솔·빵 재료 등을 서독으로 내다 헐값에 팔고 그 대금을 서독 마르크로 받은 뒤 이를 다시 서독 내 암시장에서 동독화로 바꿀 경우 무려 수십 배의 환 차익을 챙길 수 있게된 셈이다.
환 차익으로 생긴 돈은 동서독 이외의 나라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시 동독으로 흘러들어 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될 경우 동독경제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은 해마다 식품과 주요 생필품에 전체예산의 20%에 달하는 5백억 동독 마르크(2백70억달러)를 보조, 이들 생필품 값을 싼 수준에 묶고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독정부가 자국민을 위해 지원하는 막대한 국가보조금이 환 차익을 노린 밀수로 인해 서독으로 새나가는 셈이어서 동독의 고민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값싼 생필품이 지속적으로 서독으로 빠져나가게 되면 지금까지 수급균형을 이뤄왔던 동독에 생필품부족사태가 일어날 것이 뻔한 일이고 이를 다시 채워놓기 위해 동독정부는 국가 보조금을 추가로 지원해야 할 판이다.
밀수를 통한 경제위협 말고도 사람에 의한 경제위협 또한 만만치 않아 자칫하면 베를린장벽 폐쇄전인 지난 61년 때의 상황이 재현될 우려도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서독에 일자리를 갖고있는 동독인들이 임금으로 받은 서독 마르크를 암시장에서 동독화로 환전 30배의 부를 챙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베를린 같은 곳은 허드렛일에도 시간당 5서독 마르크의 임금이 지불되는 등 최소한 동독임금수준의 2배가 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동베를린은 자칫 서베를린에 직장을 갖고 있는 고소득 동베를린시민의「베드타운」으로 전락하게 되고, 굳이 환투기를 하지 않더라도 동독경제는 마비상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같은 밀수가 근절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밀수꾼들이 주로 폴란드인들이라는데 있다.
지난 1월1일부터 동독·폴란드간 여행조건이 대폭완화, 무비자 입·출국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서독정부는 이같은 동독의 사정을 감안, 서독방문 동독인들에게 지급되는 1인당 1백마르크(약3만6천원)씩의「환영비」제도를 폐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외채 1백10억달러를 포함, 1천3백억마르크(7백억달러)의 빚을 안고있는 동독정부가 더 이상 괴로움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춘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