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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렌츠 지도력 못 믿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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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독지도부의 대폭적인 개혁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연일 수십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가 계속되는등 동독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위참가 군중들의 요구도 단순히 민주화 개혁요구에서 이제는 공산통치종식·자유총선실시·호네커를 비롯한 구지도층 인사에 대한 단죄등을 요구하는등 시간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크렌츠 공산당서기장은 19일 자신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TV기자회견을 자청, 전지도부의 과오를 엄하게 비판, 호네커 전서기장을 비롯한 구지도층 인사중 몇명에 대한 법적 기소가능성을 비췄다.
또 비록 원칙론적 얘기이긴 하지만 다음달 15∼17일에 있을 임시당대회에서 『만약 당의 뜻이 그러하다면』 당의 결정에 따라 사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실 크렌츠는 지난번 폭넓은 개혁조치 발표에도 불구, 지도자로서 국민들로부터 깊은 불신을 받고 있다. 최근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시위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인물」 인 크렌츠의 사임요구가 반드시 끼어들어 있다.
대부분의 동독인들은 크렌츠가 근본적으로 호네커가 키워낸 인물이며, 그로서는 개혁정책을 필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뿐만아니라 당내 일부에서도 크렌츠의 지도력으로는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일고 있어, 다음달 당대회에서 지도부가 개편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크렌츠를 대신할 인물로는 2명이 있다. 베를린시당 제1서기로 선전담당 정치국원인 사보프스키와 모트로프 내각총리가 그들이다.
현지 서방외교관들은 샤보프스키가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는 정치성향에 있어선 보수적 인물이긴 하나 최근 군중시위에 직접 나가 시위군중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동독 사회주의 체제를 강력히 옹호, 군중들로부터 야유와 찬사를 동시에 받은바 있다. 지난 19일자 영국 선데이 타임스지 보도에 따르면 샤보프스키가 지난번 호네커 축출 쿠데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소련측으로부터도 신임을 받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동독의 고르바초프」로 불리는 모트로프 총리는 칭렴결백하며 무사한 인물에다 그의 개혁노선이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으나 현재 정치국 정위원이 아니라는 자격상 미비때문에 서기장이 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동독지도부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는 공산당 독재포기에 의한 다당제 도입과 자유총선.
이 두 문제는 서로 같은 고리로 연결돼 있는데 만일 지금 당장 다당제에 의한 자유총선을 실시할 경우 공산당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한 형편이다. 한 공산당 고위책임자는 지금 자유선거를 실시할 경우 공산당이 얻을 수 있는 표는 고작 5∼10%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공산당은 될 수 있는대로 시간을 끌면서 당의 체질을 장화하고 대국민 이미지를 개선한 다음에 자유선거를 실시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를 위해선 당지도부의 면모를 다시 한번 쇄신하는 한편 구지도층의 비리를 척결, 단죄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끌어보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때문에 호네커 전당서기장, 미타크 전장관등 구지도층에 대한 기소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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