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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못꺾은 종이호랑이" 대놓고 美 조롱한 中환구시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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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자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총편(편집인)이 16일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라며 미국의 실패를 조롱했다. 반면 중국 주요 관영 매체는 아프간 사태를 논평 없이 짤막하게 보도하며 관망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탈레반 무장세력이 이미 카불 대통령궁을 장악한 알자지라 화면을 중국중앙방송(CC-TV)이 16일 보도했다. [CC-TV 캡처]

탈레반 무장세력이 이미 카불 대통령궁을 장악한 알자지라 화면을 중국중앙방송(CC-TV)이 16일 보도했다. [CC-TV 캡처]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라며 대만을 겨냥한 후시진 중국 환구시보 총편 웨이보. [웨이보 캡처]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라며 대만을 겨냥한 후시진 중국 환구시보 총편 웨이보. [웨이보 캡처]

후시진 총편은 16일 0시 26분 자신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대만독립분자들은 똑똑히 보아라. 미국이 어떻게 충실한 동맹 카불 정부를 버리는지를. 너희에게 또 일깨우고 싶은 점이 있다. 오늘 카불 정권이 어떻게 미국에 버려졌는지, 어제는 남베트남 사이공 정권이 어떻게 미국에 버려졌는지, 너희도 장래에 어떻게 미국에 버려질는지. 사실 대만은 이미 미국에 한 번 버려졌었다”라는 글을 올렸다. 중국 네티즌들은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웨이보는 해당 구절을 금지어로 지정해 검색을 불허했다. 중국 내 민족주의가 과도하게 번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모양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라는 검색어가 금지어로 지정되어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웨이보 캡처]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라는 검색어가 금지어로 지정되어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웨이보 캡처]

16일자 환구시보 사설 역시 대만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 공격에 집중했다. 사설은 “강대한 미국이 20년이란 시간을 들였음에도, 외부 원조가 없던 아프간 탈레반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며 “이번 실패는 월남전 실패보다 더 분명하게 미국의 무력함을 보여줬다. 미국은 확실히 ‘종이호랑이’인 듯하다”고 적었다.

“어젠 사이공, 오늘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 # 환구시보 편집인은 웨이보서 조롱조 논평 #신장 위구르에 불똥튈까…관영매체 쉬쉬

환구시보는 제국의 무덤으로 불리는 아프간의 다음 희생자가 중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사설은 “서방 여론은 요 며칠 끊임없이 중국을 거론하며, 심지어 아프간의 변화가 중국을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라 떠든다. 이는 순전히 정서적인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썼다. 또 “중국과 아프간 사이에는 무척 좁은 와칸 회랑(와칸 계곡)만 있을 뿐이다. 이곳을 중국 군대가 겹겹이 막고 있다. 새 한 마리도 아프간에서 건너오기 어렵다. ‘3대 세력(폭력 테러 세력·민족 분열 세력·종교 극단 세력)’은 이 통로를 건널 생각을 접었다”고 주장했다. 와칸 회랑은 아프간 북동부 바다흐샨주에 위치한 험준한 산악 지대로 중앙아시아의 군사전략 요충지다.

실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한 달 아프간 불똥이 중국으로 번지지 않도록 예방외교에 주력했다.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아프간과 인접한 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을 순방했다. 14일에는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아프가니스탄 연락 그룹’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했다. 이어 28일에는 톈진(天津)에서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불러 회담을 갖고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과 관계를 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16일 아프간 사태를 보도한 중국 베이징의 대중지 신경보의 7면 국제면(왼쪽)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16면 국제면(오른쪽). 신경보는 전면에 걸쳐 아프간 사태를 보도했고, 인민일보는 붉은색 네모 부분의 일단으로 단신 처리하는 데 그쳤다. [신경보·인민일보 캡처]

16일 아프간 사태를 보도한 중국 베이징의 대중지 신경보의 7면 국제면(왼쪽)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16면 국제면(오른쪽). 신경보는 전면에 걸쳐 아프간 사태를 보도했고, 인민일보는 붉은색 네모 부분의 일단으로 단신 처리하는 데 그쳤다. [신경보·인민일보 캡처]

중국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관영 매체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중국중앙방송(CC-TV)는 15일 메인 뉴스에서 아프간 사태를 1분 6초짜리 짧은 리포트로 “아프간 내무부가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표명했다”고 전하는 데 그쳤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16일 국제면인 16면에 1단 기사로 “아프간 탈레반 수도 카불 진입”이라는 제목으로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논의했다는 사실을 전하는 데 그쳤다. 반면 일반인이 많이 보는 신경보는 독자의 관심사를 반영한 듯 16일 자에 1면 제목과 7면 국제면 전면에 관영 신화사 보도를 모아 카불 상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앞서 아프간 주재 중국 대사관은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은 이미 아프간 각 정파에 중국인의 안전보장을 요구했다며 현재 아프간에 주재하는 모든 중국인은 안전하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16일 오후 2주간의 여름 휴가를 마치고 정례 브리핑을 재개해 탈레반 정부 집권과 관련된 공식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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