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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교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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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대 초반 나는 세 가지 얼굴이었다. 1940년대 폴란드의 시골이었다. 그때 조국은 나치 독일이 지배하고 있었다.

낮엔 채석장에서 돌 깨는 노동자 생활을 했다. 동료들과의 단순하고 거칠고 힘겨운 육체노동은 내게 공동체의 삶의 가치를 일깨웠다. 밤엔 레지스탕스 연극운동을 했다. 내 젊은 피는 문학, 그 중에서도 연극과 희곡에 뜨거웠다. 허름한 지하실에 무대장치도 없이 이뤄진 극단 '랩소디'의 공연은 폴란드 민족의 자부심과 독립의지를 고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걸리면 독일군에 의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야 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일은 모험이었다.

나는 또한 비밀스럽게 운영되는 신학교의 학생이기도 했다. 미세하게 다가오는 신의 부르심에 저항할 수 없었다. 부르심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내 관심사는 언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신비로운 힘에 집중됐다. 이는 철학과 신학.성경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이제 내 나이 여든셋. 천국의 열쇠를 후임자에게 물려줄 때가 됐다. 10억명 가톨릭 신자를 비롯해 세계인과 작별할 시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6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 갔지만 공동체와 모국과 신이 내려준 은총은 그때나 지금이나 햇살처럼 눈부시기만 하다.

나는 25년 만에 그 은총으로 다시 시를 쓴다. '시냇물은 마냥 흐르고/숲 또한 무심히 이랑져 굽이치는데/오직 사람만이 경탄할 줄 아는 존재/그래서 사람은 홀로 외롭다/생의 마지막 문턱까지 줄지어 이어지는 경이로움'(요한 바오로 2세, '내 안에 그대 안식처 있으니', 따뜻한 손)

놀라움과 찬탄, 경이로움이야 말로 신의 은총이었다. 경탄은 예술과 역사의 장면들을 통해서도 찾아 왔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벽화는 근원과 궁극을 박력있는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재성 자체가 경이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보세. 읽어내야 하리/신비에서 신비로 이어지는 창조의 언어를'.

모레는 내가 교황에 선출된 지 25년이 되는 은경축의 날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것도 은총이고 삶의 이 문턱을 넘어서는 것도 은총이다. 관절염.파킨슨병이 육체를 괴롭히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근원과 궁극에 대한 경탄과 탐구심을 잃지 않고 있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