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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모 "세대 차이 몰랐다" 얼버무린 사과…정치 재기 노리나

중앙일보

입력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10일 사퇴 회견을 마친 뒤 관저로 가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러 가고 있다. 왼쪽부터 딸 미카엘라와 여성 참모 2명, 쿠오모 주지사. [AP=연합뉴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10일 사퇴 회견을 마친 뒤 관저로 가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러 가고 있다. 왼쪽부터 딸 미카엘라와 여성 참모 2명, 쿠오모 주지사. [AP=연합뉴스]

전ㆍ현직 공무원 등 여성 11명을 성희롱한 혐의를 받는 앤드루 쿠오모(63) 미국 뉴욕주지사가 10일(현지시간) 사퇴할 뜻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성희롱 의혹이 제기된 후 8개월 만이다. 뉴욕주 검찰이 165쪽에 달하는 수사보고서를 발표한 지는 꼭 일주일 만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 지도부가 사임을 압박하는 가운데 뉴욕 주의회가 탄핵 움직임을 보이자 나온 결정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쿠오모가 주지사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은 참회나 회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됐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소속 3선 주지사인 쿠오모는 10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영상 생중계를 통해 "14일 뒤"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재개가 시급한 상황에 자신에 대한 소송과 수사 등으로 주 정부 기능이 멈춰서는 안 된다며 ”현 상황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가 물러나서 정부가 다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성희롱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그가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읽어내려 가기 전 개인 변호사는 40분가량 검찰 수사보고서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다. 쿠오모 주지사도 검찰 측 주장에 대해 “진심으로 그것이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불공평(unfair)하고 거짓된 일(untruthful)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범죄 때문이 아니라 수사와 송사로 주 정부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을 방해해 뉴욕주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unhelpful)“ 것을 절대로 원치 않기 때문에 사퇴한다는 게 쿠오모 측 논리다. 그러면서도 “내가 진정으로 불쾌하게 한 11명의 여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있다”라면서 “그에 대해 깊이,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쿠오모는 “그 누구도 부적절하게 만진 적이 없다”는 기존 주장을 이번에는 되풀이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에 대한 오해는 피해자들과의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새로운 논리를 제시했다.

쿠오모는 포옹과 키스 등 신체 접촉을 언급하며 “나는 사랑스러우려고 했는데, 여성들은 구식이고 불쾌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세대교체와 문화 교체가 있었는데 내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내 마음속으로는 누구와도 선을 넘은 적은 없지만, 선의 위치가 수정 변경된 정도는 깨닫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쿠오모는 "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며, 어떤 성적인 함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었다"고도 했다.

레티시아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지난 3일 쿠오모 주지사가 여성들을 성희롱해 주(州)법과 연방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수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쿠오모 본인을 포함해 179명의 참고인과 목격자를 조사해 증언을 확보하고, e메일ㆍ문자메시지ㆍ사진 등 증거도 폭넓게 수집했다.

이에 따르면 쿠오모는 주지사 관저에서 여성 비서를 포옹하면서 블라우스 안에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앞에 서 있는 경호 담당 여성 경찰관의 목에서부터 허리까지를 손으로 훑은 뒤 “이봐, 너”라고 말했다. 또 다른 비서에게 입술에 키스하고 전용기 안에서 ‘옷 벗기 포커’를 치자고 제안했다. 과거 성폭행을 당한 비서에게 나이든 남자와 만난 적 있느냐 등 성생활에 관해 물었다. 행사장에서 만난 여성이 입고 있던 티셔츠 가슴 부위에 새겨진 회사 이름을 꾹꾹 눌렀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같이 상세한 수사 결과 발표 후에도 쿠오모 주지사는 포기하지 않고 돌파구를 모색해 왔다. 하지만 주의회가 탄핵 절차를 준비하고, 민주당 소속 의원들조차 돌아섰다는 정보를 파악한 뒤 자발적 사임을 선택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뉴욕 상원의원 2명 등 민주당 지도부의 압박에도 꿈쩍 않던 쿠오모가 사퇴를 결정한 데는 주 의회 탄핵 가능성이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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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인 단체장은 WP에 "그는 자신이 탄핵당할 것을 알았다"면서 "뉴욕주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당한 주지사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주 상원 탄핵 심판에서 탄핵이 확정되면 뉴욕주 선출직에 출마하는 것이 영구 금지된다. 주 상원의원 3분의 2가량이 쿠오모에게 사퇴를 요구한다는 지역 언론 보도도 나왔다. 탄핵보다는 사퇴를 택한 것은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서는 쿠오모가 사임 발효 시점을 14일 후로 잡은 것은 민주당 내 분위기와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생존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것으로 본다.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이 성 스캔들에서 살아남은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주지사직은 캐시 호컬 부지사가 이어받아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 맡게 된다. 여성 뉴욕 주지사는 역사상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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