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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하락 부른 尹 '후쿠시마 발언'…탈원전 마케팅 꼬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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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6일 대전 유성구의 한 호프집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탈원전 4년의 역설' 만민토론회에 참석,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6일 대전 유성구의 한 호프집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탈원전 4년의 역설' 만민토론회에 참석,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서울대 법대를 나와 각각 검사와 판사로 법조인의 길을 걷다 대선판에 뛰어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여러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탈원전 정책에 반대한 게 정치적 자산이 됐다는 점도 같다.

두 사람 모두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며 현 정부에 맞섰던 걸 정치 참여의 계기로 설명하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달 5일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만난 뒤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은 월성 원전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재형 전 원장은 지난 4일 출마 선언 때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은 월성1호기 조기 폐쇄의 타당성을 감사하는 저에게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맞지 않으면 차라리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격한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경제적·논리적으로는 맞는 방향이더라도 선거 기술적으로는 꼭 득이 되는 전략만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국민 상당수는 원전에 대해 효율성이라는 장점과 위험성이라는 단점을 동시에 느끼는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 찬성 여론 높지만 사고 위험에 대한 불안도 존재 

2019년 5월 한국원자력학회가 의뢰해 발간한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조사(4차) 보고서’에는 이같은 국민 정서가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 이용에 대해 조사 대상 72.3%가 찬성한 반면 반대는 25.2%에 불과했다. 원전이 ‘안전하다’는 응답도 62.6%로 ‘안전하지 않다’(34.1%)는 응답을 크게 앞섰다. 반면 원전의 단점과 관련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위험을 끼치는 중대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답변도 72.9%에 달했다. ‘사용 후 핵연료 등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가 까다롭다’는 응답도 85%에 이르렀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7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마을회관에서 열린 월성 원전 주민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7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마을회관에서 열린 월성 원전 주민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에선 윤석열 전 총장의 ‘후쿠시마 원전 발언’이 설화 논란을 빚은 것도 이런 국민 정서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4일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를 입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언급하며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게 아니다. 지진과 해일이 있어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말했다. 발언의 원래 의도는 원전 자체의 안전성을 강조하려던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여권뿐 아니라 야권 경쟁자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이런 논란 속에서 최근 윤 전 총장의 지지율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TBS 의뢰로 지난 6~7일 조사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9일 발표한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주에 비해 4%포인트 하락한 28.3%를 기록했다.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입당 뒤 발표된 지난 2일 조사에서 5.4%포인트 뛰어오르며 누렸던 ‘입당 효과’를 대부분 반납한 셈이다. 반면 여권의 1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1%포인트 상승한 28.4%를 얻었다. 비록 오차범위 내의 미세한 차이지만 KSOI 조사 기준으로는 지난 3월 4일 윤석열 전 총장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이후 처음으로 이 지사가 윤 전 총장을 앞섰다.

한국갤럽이 지난 3~5일 조사해 6일 발표한 여론조사의 흐름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전 조사에 비해 윤 전 총장은 6%포인트 떨어진 19%였던 반면 이 지사는 1%포인트 오른 25%였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도 검찰총장 사퇴 이후 20% 아래로 떨어진 건 5개월여 만에 이번이 처음이었다.

윤석열, 후쿠시마 등 연이은 발언 논란 뒤 지지율 하락 

윤 전 총장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정치권에선 부정식품, 페미니즘, 후쿠시마 등 잇따른 설화 논란과 이준석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갈등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강윤 KSOI 소장은 “여러 논란 중에서도 지지율에 중요하게 영향을 끼친 건 후쿠시마 발언이나 부정식품 발언과 같은 안전에 관한 문제”라며 “그 중에서도 후쿠시마 발언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출마 선언을 한 최재형 전 원장은 KSOI 조사에서 지난주에 비해 0.3%포인트 오른 6.1%를 기록하는 데 그쳐 여전히 지지율 두 자릿수 기록에 실패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선 출마 선언 때의 각종 정책 관련 질문에 “준비가 안 됐다”고 발언한 것도 생각보다 ‘고전’하는 이유로 꼽히지만, ‘탈원전’이란 단어를 다섯 차례나 사용하며 탈원전 문제를 앞세웠던 것도 일단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셈이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후쿠시마 발언은 원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문제가 큰 발언”이라며 “중도 성향의 유권자나 친환경에 민감한 젊은 세대를 고려하면 과격한 친원전 발언을 하는 건 실익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윤 소장도 “윤석열 전 총장과 최재형 전 원장이 탈원전 문제에 자기확증편향과 같은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며 “그러한 모습이 국민들에게 크게 와닿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중도층 고려하면 과격한 친원전 발언 실익 없어”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탈원전 반대는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는 유효성은 있다”면서도 “부동산이나 경제 정책과 같은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문제에 대해 정책 대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아 탈원전 반대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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