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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국 '견우 직녀' vs 중국 '우랑 직녀'…뭐가 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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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65)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피어났던 전라북도 남원의 광한루에 오작교 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몸을 잇대어 은하수 위를 가로질러 놓았다는 그 다리이다. 광한루에 오작교라는 이름이 붙은 다리가 있다는 사실이 괜히 생뚱맞은 듯하면서도 꽤 그럴듯하기도 한데, 살펴보니 광한루 자체가 꽤 우주적 지향을 담은 곳이었다.

광한루는 1419년(세종 1년) 남원으로 유배 온 황희가 ‘광통루(廣通樓)’라는 이름으로 올렸는데, 1434년에 중건하면서 관찰사 정인지가 그 빼어난 경치에 취해 전설 속의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한루 앞에 조성된 호수는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고, 광한루에 오작교가 만들어진 것은 1582년(선조 15년)에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새로 놓은 것이라는데, 폭 2.8m 길이 58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지개다리라고 한다.

전라북도 남원의 광한루에 있는 오작교.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몸을 잇대어 은하수 위를 가로질러 놓았다는 그 다리다. [중앙포토]

전라북도 남원의 광한루에 있는 오작교.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몸을 잇대어 은하수 위를 가로질러 놓았다는 그 다리다. [중앙포토]

오작교에서 발견된 원형 윷판과 칠성 성혈. [사진 남원시]

오작교에서 발견된 원형 윷판과 칠성 성혈. [사진 남원시]

이 오작교에서 2019년에 원형 윷판과 칠성 성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오작교의 상판석에 우주를 상징하는 둥그런 형상 안에 가로와 세로로 일곱 개의 점이 찍힌 문양이 있는데, 이것이 칠월칠석을 상징하는 칠성 성혈이라는 것이다. 오작교는 네 개의 홍예경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칠성 성혈의 열십자 각 끝이 이 오작교 다리의 네 구멍을 상징하며, 남녀노소·동서남북·춘하추동·사농공상을 우주화한 것이라는 해석도 흥미롭다. 저 하늘의 별과 은하수의 공간에서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다리를 건너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담은 이곳에서 춘향과 몽룡의 안타까운 만남의 이야기가 조심스레 시작된 데에도 이런 우주적 운명의 기운이 작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견우직녀 이야기는 기원전 5세기경에 성립된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詩經)』 ‘대동’(大東)이라는 시에서 베 짜는 직녀와 수레 끄는 견우, 은하수를 노래하는 내용으로 처음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아직 스토리가 충분히 구성되지는 않는데, 육조 시대(6세기 중기)의 소설이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는 비교적 이야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나라의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찾을 수 없고, 국어학자 심의린이 1926년 한성도서주식회사를 통해 펴낸 『조선동화대집』에 ‘오작교’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이 가장 오래된 채록본이라고 한다.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 속 견우와 직녀.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 속 견우와 직녀.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천제의 손녀로 길쌈을 잘하고 부지런했던 직녀가 견우와 혼인을 하였는데, 이들이 신혼의 즐거움에만 빠져 지내면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자 천제가 노하여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둘이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만 칠월칠석에 만날 수 있도록 했더니 까마귀와 까치들이 자신의 머리를 잇대어 다리를 놓아주었다. 칠석이 지나면 까막까치가 모두 머리가 벗겨지는 이유가 다리를 놓느라 그랬다고 하며, 칠석마다 오는 비는 견우직녀가 만나며 흘린 반가움의 눈물이고, 칠석 다음날 오는 비는 헤어짐의 눈물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우랑직녀(牛郞織女)’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데, ‘맹강녀(孟姜女)’, ‘백사전(白蛇傳)’, ‘양축(梁祝)’과 더불어 중국 4대 설화로 일컬어진다. 5세기 초 고구려 고분의 특징을 잘 간직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평안남도 남포시의 덕흥리 고분벽화에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소를 끄는 견우와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등장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가 한반도에 전해진 것도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유독 반짝이는 두 별은 고대 중국인의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이들 별에 이름이 붙고 이야기가 더해지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설화에서도 안타까운 만남이나 오작교, 칠월칠석 등 익숙한 내용이 모두 등장하는데, 여기에 ‘선녀와 나무꾼’을 떠올릴 법한 이야기가 끼어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이야기가 전승되는 과정 중에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상대의 옷을 감추어 결혼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 그 옷을 돌려주자 상대가 떠나버리는 이야기가 전승되다가 우랑직녀 이야기와 섞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는 우랑(牛郞)이 형수의 핍박을 받다가 늙은 소 하나 끌고 집을 나오게 되었는데, 소가 방법을 알려주어 직녀의 옷을 훔침으로써 결혼하게 되었다. 그 후 각자 직분에 소홀하게 되면서 은하수 양쪽으로 유배되어 일 년에 한 번씩 만나게 된다. 혹은 다른 변이형은 우랑과 직녀가 결혼 후 아이까지 낳고 살다가 천병(天兵)이 직녀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버렸다. 견우가 다시 소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함께 뒤를 쫓아갔더니 서왕모(西王母)가 큰 강을 만들어 이들의 만남을 막았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견우와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을 허락하되 직녀는 일 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매년 7월 7일에 까치 만 마리가 다리를 놓아준다는 이야기다.

올해는 8월 14일이 칠석이다. 음력 7월 7일. 입추도 말복도 다 지난 후 찾아오는 날이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반짝이던 두 별에서 견우와 직녀의 이름이 탄생하고, 천상계 아름다운 존재들의 결합이 그들의 실수로 지속되지 못하게 되고,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까막까치로 하여금 은하수 위로 다리를 놓게 하는 일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선녀와 나무꾼의 서사가 끼어들면서 그 만남에 계속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 나무꾼을 수탉으로 만들고야 마는 ‘선녀와 나무꾼’의 서사가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선녀와 나무꾼’에도 행복한 결말을 갖는 유형이 있긴 하지만, 그냥 좀 실수하고 안일했더라도 그들의 애틋한 정을 고려하여 만남이 지속될 수 있도록 여지를 좀 주면 어떤가 안타깝기도 한 것이다.

광한루에서 만난 춘향과 몽룡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사랑을 지켜내었다. 늙은 소와 까막까치의 도움 없이 은하수 너머에 있는 배필을 만나기 위해선 그만큼 투쟁하고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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