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아버지 경고 보다 인연 선택한 남자, 용이 된 ‘지네각시’

중앙일보

입력 2021.07.21 10: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64)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다. 정월 초하루 앞두고 다른 집은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해 입히는데, 옷은커녕 아침저녁 먹을거리도 없어 아이들이 빈 밥상만 쳐다보고 앉아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속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이만큼은 키웠지만 입히지도 못하고 먹이지도 못하고 있으니 살면 뭣하랴’ 싶던 남자는 섣달 그믐날 저녁, 새끼줄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찾으며 중턱쯤 올라갔는데, 저 아래서 불빛 하나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이 지나가거든 여기서 목을 매야겠다’ 생각하고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등불이 남자의 근처까지 와서는 더이상 올라가지 않고 무엇을 찾기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금방 여기 있는 걸 봤는데 어디로 갔나 모르겠네” 하는데, 불빛 아래 비치는 얼굴은 예쁜 여자였다. 여자는 금세 남자 있는 곳을 찾아내고는 이리 나오라고 했다. “아니 대체 어떤 분이기에 나더러 나오라 마라 하시오. 나는 마지막으로 여기서 목매달아 죽으려고 올라온 사람이니 당신은 당신 볼일이나 보고 가시오” 했더니 여자는 “사람이 죽는다는데 그냥 두고 갈 사람이 어디 있겠소. 내가 잘 모실 테니 나를 따라오시오” 라고 말했다. 알아서 죽는 것도 때가 있는 법인지, 여자 만나 설왕설래하다 보니 적당한 때는 놓친 것 같고, 기왕 죽을 마음마저 먹은 김에 이제 와 무슨 일이 벌어진들 뭘 어찌하겠나 싶은 마음에 남자는 여자를 따라나섰다.

이 남자의 선택과 행보는 대책 없어 보이기도 하고, 오죽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다. 아이들 밥 굶을 일이 걱정되면 뭐라도 해 먹일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구걸인들 못 할까. 아니, 그리고 죽으러 간 사람이 낯선 여자를 따라나서는 상황은 또 뭘까. 예쁜 여자라서 따라간 것일까? 일단은 이 여자의 정체가 궁금하다. 꽃뱀일까, 도적의 패거리일까. 어느 쪽이든, 가난을 비관해 세상 떠나려는 남자에게 굳이 접근하였으니 그런 눈 밝기로 어찌 그 일을 하려나 싶다. 일단 따라가 본다.

기왕 죽을 마음마저 먹은 김에 남자는 여자를 따라나섰다. 그 뒤를 한참 따라가다 보니 커다란 기와집이 나왔다. [사진 pixabay]

기왕 죽을 마음마저 먹은 김에 남자는 여자를 따라나섰다. 그 뒤를 한참 따라가다 보니 커다란 기와집이 나왔다. [사진 pixabay]

남자가 여자의 뒤를 따라 한참 가다 보니 커다란 기와집이 나오는데, 여자가 자기 집이라고 하며 안내하더니 밥 한 상을 잘 차려 내왔다. 남자는 굶어 죽어가는 처자식이 있는데, 나만 배불리 먹을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어쨌든 꾸역꾸역 다 먹고 나니 여자가 이제부터 자기와 함께 살자고 하였다. 남자가 식구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여자는 자기가 다 보살펴줄 테니 집 생각은 하지 말라면서, 다만 집에는 일 년에 설날과 추석 두 번만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고 그럭저럭 봄, 여름 지나 추석이 다가왔다.

남자는 약속대로 추석이니 집에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여자는 “아, 가셔야지요” 하면서도 뒷말을 덧붙였다. “대신, 주무시지 말고 곧장 돌아오셔야 합니다.” 남자는 알겠다고 하고 자기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대문도 변변치 않아 거적문을 달아놓고 있던 집이 커다란 기와집이 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좋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명절 준비하느라 온갖 음식이 그득했다. 식구들은 남자가 어디 가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남자도 그제야 산속 여자가 자기 식구들을 이렇게 잘 돌봐주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나는 오늘 중으로 다시 가야 한다. 나 없더라도 차례 잘 지내라” 하고 산속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이제 집 걱정 없이 산속 여자와 살면서 자기 집에는 일 년에 두 번씩만 다녀왔다.

그렇게 지내다 또 설날이 다가와 집에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그날따라 누군가 남자 뒤를 쫓아왔다. 그래 쳐다보니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아니, 아버지가 웬일이십니까” 하고 놀라 물으니, 아버지는 “너, 거기 가면 죽는다. 가지 말아라” 하는 것이었다.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난 것도 이상했지만, 산속 집에 가지 말라며 말리는 것도 이상했다. 그날따라 여자가 이번에 집에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며 가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랬던 건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아버지 말씀을 들어야 하는 건지, 여자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참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런데 뒤이어 아버지의 말씀이 더 기가 막혔다. “야야, 산속 그 여자가 그게 사람이 아니고 지네다. 너 오늘 가면 그 지네한테 죽으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이따 가서 밥을 먹거든 그 밥을 삼키지 말고 그 지네한테 뱉어라. 그러면 네가 살 거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남자는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죽을 생각을 하였으나 어쨌든 여자를 만나 목숨 부지했고, 그것뿐만 아니라 여자가 돌봐준 덕에 식구들도 굶어 죽지 않고 잘살고 있다. 현재는 산속 집과 본가를 오가며 지내고 있지만 크게 문제 없고, 오히려 식구들도 산속 여자에게 고마워하고 있으며 남자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 일 없이 잘 사는 데에는 여자의 덕이 크다. 그런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서 사실 그 여자가 지네이니 죽여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진 어땠는지 몰라도, 앞으로 그 지네가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이 경고하는 일이니 무시할 일만도 아닐 것이며 이 말씀을 안 들으면 불효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일단 여자가 있는 산속 집으로 돌아갔다. 뒷문으로 살짝 가서 방 안을 몰래 들여다보니 방 안엔 커다랗고 벌건 지네가 꿈틀대고 있었다. 남자는 다시 앞마당으로 가서 다녀왔다고 인사하며 들어섰고, 여자는 별일 없었느냐고 하며 저녁 밥상을 차려 내왔다. 남자는 밥 한 숟갈을 떠먹고 오물거리며 아까 아버지가 한 말씀을 떠올렸다. ‘나는 어차피 지금 저 여자 손에 죽는다고 해도 원통할 일 없다. 그러니 내가 저 여자를 죽일 수는 없다.’ 남자는 밥을 그대로 꿀꺽 삼켰다.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왠지 안절부절못하던 여자는 그 순간 남자에게 달려들어 남자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이게 무슨 뜻이오? 혹시 오늘 오시다가 당신 아버지를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남자가 놀라 바라보자 여자는, “그게 당신 아버지가 아니라 천 년 묵은 구렁이입니다. 내가 승천하는 걸 방해하려고 당신 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오. 당신이 그 구렁이가 시킨 대로 내게 밥을 뱉었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마음을 좋게 써준 덕분에 나는 이제 주어진 시간을 채우고 승천을 할 수 있게 되었소. 당신에겐 이제 좋은 일만 생길 것이오”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여자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그 순간 산속 집은 사라졌고, 남자는 여자가 남겨놓은 재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

당연히 우리 사는 현실 세계에서는 벌건 지네가 내게 접근해올 일은 없고, 내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본래 식구들을 저버리고 그와 함께 산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며, 갑자기 천 년 묵은 구렁이는 웬 말이며 지네가 승천한다는 것은 또 무슨 소린가 싶다. 그러나 살다 보면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종종 생기게 마련이다. 내게 다가오는 인연이 실제 정체는 겉모습과 다를 수도 있고, 예쁘거나 친절한 겉모습 안에 벌건 지네 같은 흉측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고, 세상의 법칙이나 도덕기준 같은 규범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혼령과도 같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 미묘하게 우리의 초자아를 자극한다.

'지네각시'를 읽으며 새로 떠오린 키워드는 '인연의 소중함'이다. 서로 관계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진 pixabay]

'지네각시'를 읽으며 새로 떠오린 키워드는 '인연의 소중함'이다. 서로 관계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진 pixabay]

남자가 맞이한 선택의 순간은 내 삶에서도 주요 장면으로 구성될 수 있다. 과도한 책임감과 무력감에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이고, 그때 생판 모르던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건 꼭 내가 뿌린 씨앗 덕분이라기보다 단지 상대방의 이기적 필요에 내가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남자의 선택 기준은 자신에게 다가온 인연에 충실하게 임하는 방향이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든 그로 인해 자신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을 떠올리며 판단하였다. 자신이 얻은 이득에 대한 보답을 잊지 않은 것이다. ‘이만 하면 충분하다’는 판단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오늘 다룬 ‘지네각시’는 사실 이 지면에서 예전에 한 번 쓴 적 있다. 그때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떠올리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에 주목했었는데, 이번에 새로 떠올린 키워드는 ‘인연의 소중함’이다. 서로 관계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선택의 갈림길을 마주했을 때 상대방을 경계하고 의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경계, 의심, 불신이 서로를 지네처럼 역겹게 보게 하는 것이지 않을까. 남자가 여자를 향해 밥을 뱉었다면 그것은 지네를 퇴치하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지만, 벌건 지네 모습을 보고도 밥을 뱉지 않고 꿀떡 삼켰다면 그것은 믿음과 의지를 통해 지네도 용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들여다볼 때마다 새삼스럽고 새롭다.

서로 원인이 되고 서로 결과가 되는 소중한 관계를 인연이라 한다면, 나는 내게 다가온 인연에게 어떤 원인과 결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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