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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무대 위에 오르다 '… 읽기의 방식전 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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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시인들이 록 밴드들의 공연장으로 익히 알려진 홍대 앞 쌈지스페이스 무대에 섰다.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강아지와 함께 퍼포먼스를 벌이고, 직접 편집한 영상물을 상영하는 도중 자신들의 시를 낭송했다.

1976년생 김민정.문혜진 시인부터 '최고령' 함성호(40) 시인까지 소장 시인 11명이 지난 10일 저녁 쌈지스페이스 2층 미디어 씨어터 '바람' 무대에서 벌인 공연의 이름은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모색, 읽기의 방식전 Ⅱ'. 97년 '21세기 전망' 동인들이 주축이 돼 벌였던 첫번째 공연의 후속 무대다.

공연에 참가한 시인들의 시 세계를 압축해서 뭉뚱그려야 한다면 그것의 근사치는 '난해함'이 될 것이다. 첫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에서 빈번하게 똥을 등장시켜 '똥의 시인'이라는 오명(?)을 얻은 차창룡(37)씨의 경우는 그나마 쉬운 편이다.

연왕모(34)씨의 시집 '개들의 예감' '글 1'의 전문은 "개미의 잘린 다리/ㄱ". 한글 36 자모의 첫번째 글자 'ㄱ'에서 개미의, 그것도 잘린 다리를 연상하는 시인의 기지에 무릎을 치게 되지만 그런 발견이 어떻게 제목 '글 1'과 연결되는지에 궁금증이 이르면 대답이 궁해진다.

시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낭송 퍼포먼스' 열한마당은 시 세계의 난해함에 육박해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연씨는 태어난 지 두달 남짓한 풍산개 풍돌이가 캐러멜 맛 영양제가 발려진 점자책을 정신없이 핥는 옆에서 "헐떡이는 개 눈물로 말한다/내 혀를 빛으로 적셔줘"로 끝나는 자신의 시 '개꼬리, 죽어버린 횃불'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처럼 뱉어낸 다음 점자책을 같이 핥았다.

록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이기도 한 성기완(36)씨는 "시를 직접 관객들에게 나눠주겠다"고 공언한 뒤 자신의 근작 시집 '유리 이야기'를 아무 쪽이나 펼쳐 읽고는 곧바로 칼로 찢어, 찢겨진 쪽들을 객석을 돌아다니며 나눠주는 과정을 반복했다. 오래지 않아 '유리 이야기'는 껍질만 남았다.

'모험의 왕과 코코넛의 귀족들'이라는 시집을 갖고 있는 서정학(32)씨는 '식사 하셨나요?''왜 숨을 쉬지 않죠?''눈알 사셨어요?''박수 안 치세요?' 같은 무의미한 질문들이 적힌 종이쪽지들을 쉴 새 없이 읽고 버렸다. 관객들은 종잡을 수 없는 질문공세에 정확히 3분간 시달려야 했다.

미술가들의 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직.간접적으로 한두번쯤 경험했을 관객들에게 '읽기의 방식전'이 준 충격은 사실 그리 강력하지 않다. 핵심은 '읽기의 방식전'이 '시 쓰기와 읽기, 전달과 해석의 다양한 변주'를 실험했다는 데 있다.

공연을 기획한 함성호씨는 "정치적 프리미엄으로 시가 흥행됐던 80년대와 모색의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의 시는 서정의 시대는 갔다고 할만큼 쉽지 않아졌다. 현실은 복잡해졌고 시는 표현의 욕구를 잔뜩 품은,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처럼 돼버렸다. 따라서 직접적인 소통이 긴요하다"고 말했다.'읽기의 방식전' 홈페이지는 (http://galapagos.nablue.net/poem/event.html)이다.

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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