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눈에 탄탄한 몸매···연 130억 버는 'Z세대 이상형'

중앙일보

입력 2021.07.28 05:00

업데이트 2021.07.28 15:11

“볼수록 매력 있네”“실제로 만나고 싶어요”

여느 연예인 SNS에 달린 댓글이 아니다. 지난해 12월30일 세상에 알려진 가상 인간 ‘로지’ 얘기다.
가상 인간의 정체(?)를 밝히기 전부터 꾸준히 SNS 활동을 해온 로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현재 4만 명에 달한다. 로지가 출연한 ‘신한라이프’ 광고는 유튜브에서 1000만 조회 수를 돌파했다.

한국에 로지가 있다면 미국엔 ‘릴 미켈라’가 있다. LA에 사는 19세 미국인으로 설정된 가상 인플루언서인 릴 미켈라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02만명, 연간 수입이 약 130억원에 이르는 명실상부 ‘셀럽(celebrity)’이다. 이밖에 LG전자의 가상 인간 김래아, 영국의 슈듀, 일본의 이마, 중국의 아야이 등 가상 인플루언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사람만이 가진 '개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가상 인간'들의 시대다. 사진 로지 인스타그램

사람만이 가진 '개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가상 인간'들의 시대다. 사진 로지 인스타그램

이들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젊은 세대)에게 통하는 외모와 스타일을 갖췄다는 점이다. 이들 가상 인간들은 얼굴과 옷차림은 물론 행동까지 Z세대가 원하는 이상적 스타일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가상 인간에 깃든 Z세대 미의식

이들 가상 인간들은 Z세대가 되고 싶은 이상적 외모와 스타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사진 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이들 가상 인간들은 Z세대가 되고 싶은 이상적 외모와 스타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사진 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가상 인간 가운데 로지와 릴 미켈라가 특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못생겼다’는 반응도 있다. 으레 가상 인간이라고 하면 완벽해야 할 것 같지만, 이들은 인간처럼 친숙한 매력을 앞세운다.
로지를 제작한 사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의 김진수 이사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 얼굴을 참고하지 않고 어디에도 없는 얼굴을 만들려고 한 게 통한 것 같다”며 “흠 없이 완벽하기보다 개성 있고 신비한 얼굴”이라고 했다. 실제로 로지 얼굴을 디자인할 때 인기 연예인의 얼굴을 바탕으로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어딘가 비슷해 보일 뿐 매력적이지 않아 아예 새로운 얼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로지 얼굴은 각이 살아있는 얼굴형으로 귀여운 강아지상보다 앙큼한 고양이상에 가깝다. 인간답고 개성 있는 얼굴처럼 보이지만 해부학적으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얼굴이라는 점은 반전이다. 옆으로 긴 눈이나 귀의 위치가 실제 사람과 미묘하게 달라 긴장감과 신비감을 준다는 것이다.

로지의 개성적인 얼굴은 Z세대의 미의식을 보여준다. 이진수 페이스라인 성형외과 원장은 “요즘 Z세대는 짧고 동그란 얼굴, 비교적 먼 미간, 긴 눈, 짧은 코 등을 선호한다”며 “이들의 얼굴 취향을 분석해보면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나 만화 이미지와 닮아있다”고 설명했다.

길게 찢어진 신비한 눈에 개성있는 주근깨로 귀여운 강아지상보단 앙큼한 고양이 상에 가까운 로지의 얼굴은 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 스타일을 반영한다. 사진 로지 인스타그램

길게 찢어진 신비한 눈에 개성있는 주근깨로 귀여운 강아지상보단 앙큼한 고양이 상에 가까운 로지의 얼굴은 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 스타일을 반영한다. 사진 로지 인스타그램

금발 백인 아닌 라틴계…전형적 미인상 탈피

가상 인간들은 실제 트렌디한 인플루언서들과 외모적으로 흡사하다. 사진 켄달 제너 인스타그램

가상 인간들은 실제 트렌디한 인플루언서들과 외모적으로 흡사하다. 사진 켄달 제너 인스타그램

미국의 가상 인간 릴 미켈라는 ‘라틴계’ 미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주근깨 범벅에 치아도 살짝 벌어진 앞니를 가져 완벽한 미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최근 미국에선 금발의 백인 같은 전통적 미인상보다는 ‘킴 카다시안’ ‘켄달제너’ ‘벨라 하디드’ 등 적절하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몸매, 살짝 찢어져 올라간 눈을 한 개성 있는 얼굴의 유명인들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릴 미켈라의 ‘라틴계’ 설정이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주로 국내 아이돌 스타들의 비주얼 디렉팅을 담당하는 안미선 뷰티 컨설턴트는 “여성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중성적인 스타일, 동안이지만 각이 살아있는 긴장감 있는 얼굴이 요즘 Z세대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라며 “과거 청순가련형 전통 미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미의식을 보여준다”고 했다.

가상 인간들의 의상도 현실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스타들의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다. 사진 제니 인스타그램

가상 인간들의 의상도 현실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스타들의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다. 사진 제니 인스타그램

나라별로 인기 가상 인간들의 차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미국의 경우 개성을 좀 더 강조한 얼굴에 자기주장에 솔직하고, 명품 광고를 찍는 등 상업적 행보에 과감하다. 반면 한국은 미국보단 덜 상업적이며 얼굴도 좀 더 보편적 아름다움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일본의 가상 인간 이마는 보다 완벽한 이목구비에 흠 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전형적 가상 인간 스타일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일본의 이마처럼 사람 이상으로 완벽하게 만들어 기술력을 강조하는 것이 가상 인간 트렌드였다면, 최근엔 로지나 릴 미켈라처럼 빈틈 있고 어딘가 부족해 보여 인간적 호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가상 인간 이마. 흠 없이 완벽한 이목구비의 외모가 눈길을 끈다. 사진 이마 인스타그램

일본의 가상 인간 이마. 흠 없이 완벽한 이목구비의 외모가 눈길을 끈다. 사진 이마 인스타그램

자기주장 강한 ‘소통왕’ 행보도 매력

“1세대 가상 인간인 사이버 가수 아담이 오래 가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기술이 어색해서라기보단 당시 공중파 TV 채널 외에는 딱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아닐까요. 지금은 가상 인간들이 활동할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이 많아요. 가상 인플루언서의 성공 여부는 ‘친근감’, 그리고 이를 어필할 수 있는 꾸준한 ‘소통’에 있다고 봅니다.”

로지 제작자 김진수 이사는 가상 인간의 외모보다는 이들의 ‘활동 방식’을 인기 요인으로 꼽는다. 디지털 원주민으로 태어난 Z세대는 인간 인플루언서나 가상 인플루언서의 차이점을 못 느낀다. 어차피 인간 인플루언서도 실제로 만나기 어려운 데다, 진짜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디지털 공간에서 만나 소통하는 행위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가상 인간도 '소통'이 중요하다. 망원시장에서 치킨을 포장해가는 로지. 사진 로지 인스타그램

가상 인간도 '소통'이 중요하다. 망원시장에서 치킨을 포장해가는 로지. 사진 로지 인스타그램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목소리를 내는 릴 미켈라. 플라스틱 용기를 따로 가져가 치킨을 포장하는 친환경 ‘용기내’ 챌린지에 참여하는 로지.
이들은 가상 인플루언서가 젊은 세대들과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남 시선에 상관없이 여행이나 쇼핑 등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행보는 Z세대가 추구하는 생활 방식·문화의 집합체인 셈이다.

조승현 제일기획 캐스팅 디렉터는 “Z세대들은 진정성 있어 보이고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모델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며 “기성 세대가 가상 인간을 새로운 기술의 발전만으로 바라본다면, Z세대는 가상 인간을 하나의 캐릭터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 방식에 따라 젊은 세대의 관심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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