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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가방·옷, 안 버리고 고쳐써요.. 요즘 2030의 ‘수선하는 삶’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한때 절약 운동으로 유명했던 ‘아나바다’ 캠페인이다. 요즘엔 단순한 절약보다 환경을 위해, 적게 소비하고 적게 소유하기 위해, ‘아나바다’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건을 새로 사기보다 고쳐 쓰거나 수선하려는 움직임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낡은 것들의 힘'은 삶에서 의미있는 순간에 함께한 낡은 옷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낡은 것들의 힘'은 삶에서 의미있는 순간에 함께한 낡은 옷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 넷플릭스

헌 가방 줄게, 새 가방 다오

흔히 1세대 명품으로 불리는 루이비통 ‘3초 백’이 국내에 등장한 지도 벌써 20여 년. 한 주기를 돌아 명품 가방이 옷장 붙박이 신세로 전락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옷장 속 안 드는 명품 가방만큼 처치 곤란인 게 있을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 구매했지만 유행이 지나거나, 어딘가 낡아 보이는 느낌 때문에 손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버리거나 중고 판매도 망설여진다. 오래돼 제값을 못 받는 경우도 많은 데다, 소재도 내구성이 있어 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必환경 라이프]

이런 수요를 타고 최근 ‘명품 가방 리폼(reform)’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 명품 가방 리폼 해시태그(#)로 뜨는 게시물만 1000건이 훌쩍 넘는다. 주로 작은 수선 업체에서 부수적으로 진행됐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가방 리폼만 전문으로 하는 전문 업체도 많이 생겨났다. SNS에 수선 전후의 극적인 변신 사진을 올려 제법 사람을 끌어들이는 모양새다. 한 명품 가방 리폼 업체는 “지난해부터 가방 리폼 문의가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났다”며 “수선 예약이 밀려 오랫동안 대기해야 할 정도”라고 전했다. 소비자들이 의뢰하면 일단 가방 전체를 해체하고, 부자재를 모두 떼어 내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조합하는 방식이다. 최근엔 큰 사이즈 가방을 요즘 유행하는 작은 사이즈로 바꾸려는 사례가 많다. 실용적인 이유도 있지만 부모님께 받은 선물, 첫 월급 기념 산 가방 등을 버리기 어려워 찾는 경우도 있다. 수선 비용은 20만~50만원까지 형성되어 있지만, 이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치겠다는 수요가 많다.

안 쓰는 쇼퍼백을 유행하는 버킷백으로 리폼했다. 사진 레더리

안 쓰는 쇼퍼백을 유행하는 버킷백으로 리폼했다. 사진 레더리

수선의 범위를 넘어선 ‘업사이클링’ 가방도 인기다. 본래 형태를 아예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디자인을 변형시키거나, 한 가방에서 나온 재료가 아닌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디자인하는 경우다. 명품 가방을 보관할 때 쓰는 더스트 백이나 오래된 스카프, 티셔츠 등을 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티셔츠 앞판에 그려진 브랜드 로고를 활용해 로고 포인트 가방을 만들기도 한다. 일명 ‘아트 백’으로 불리는 업사이클링 가방을소개하는 플랫폼 ‘오픈톨드’ 대표 김가윤 씨는 “하나밖에 없는디자인인 데다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고객들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희소한 디자인을 찾는 20·30대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다.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FIJ의 작품. 버리는 더스트백과 유니폼 등을 가공해 만든 쇼퍼백이다. 사진 오픈톨드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FIJ의 작품. 버리는 더스트백과 유니폼 등을 가공해 만든 쇼퍼백이다. 사진 오픈톨드

비용 들어도 수선해 오래 쓰는 게 좋아

입지 않는 재킷을 해체해 재조립하는 과정. 사진 래코드

입지 않는 재킷을 해체해 재조립하는 과정. 사진 래코드

옷장 속에서 잠자는 옷을 수선하기도 한다. 코오롱 FnC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는 개인 맞춤 서비스 ‘리컬렉션’을 운영 중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추억이 많거나, 애착을 느끼는 옷이지만 막상 평소에 잘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이 대상이다. 개인이 의뢰하면 디자이너와 상담 후 봉제 전문가가 수작업으로 옷을 뜯고 재조합해 새롭게 만들어 준다. 해당 서비스를 이용했던 경험이 있는 이솔(남·28)씨는 “최근엔 잘 안 입게 되던 재킷 두 개를 뜯어 하나의 새로운 재킷으로 만들었다”며 “애착은 가지만 활용도가 떨어졌던 옷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수선비용이 들었지만 좋아하는 옷을 버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어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재킷 하나를 만들고 남은 소재와 부자재도 잘 보관했다가 또 다른 제품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입지 않는 재킷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새로운 재킷이 만들어졌다. 사진 래코드

입지 않는 재킷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새로운 재킷이 만들어졌다. 사진 래코드

깨진 그릇도 다시 보자, 도자기 수리  

금이 간 그릇을 킨츠키 기법으로 수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수미 작가

금이 간 그릇을 킨츠키 기법으로 수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수미 작가

가방·옷 등 패션만 수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엔 도자기도 수리한다. 옻칠 공예의 일종인 ‘킨츠키’는 금으로 이어 붙인다는 뜻의 일본식 도자기 수리 기법이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밀가루 풀로 이어 붙인 뒤 깨진 선을 따라 옻을 칠하고 금가루나 은가루를 뿌려 마무리한다. 차 도구처럼 연약해 깨지기 쉬운 도자기부터 일상에서 쓰는 그릇, 화병도 수리가 가능하다. 킨츠키 기법을 배우는 소규모 클래스도 입소문을 타고 성행 중이다. ‘이도’ 등 도자기 업체에서 진행하거나, 소규모 작업실에서 도자 작가들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부터 일반인 대상 킨츠키 클래스를 운영해온 김수미 작가는 “지난해부터 예약이 어려워졌을 정도 관심이 뜨거운 상태”라며 “이 나간 컵이나 금이 간 그릇 등 아끼는 도자기가 못 쓰게 됐을 때 버리기보다 수리해서 다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했다. 직접 수리하면서 과정 자체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깨진 선을 따라 특유의 문양이 생긴 그릇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그릇이 된다는 점도 매력이다.

금이 간 부분을 메운 흔적은 그릇의 역사이자 개성이 된다. 사진 김수미 작가

금이 간 부분을 메운 흔적은 그릇의 역사이자 개성이 된다. 사진 김수미 작가

지난달 1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낡은 것들의 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한 벌의 낡은 옷에 얽힌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의미있는 삶의 순간에 함께한 옷을 매개로 풀어놓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낡은 것은 새 것보다 힘이 세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빠르게 많이 소비하기보다 적은 것을 오랫동안 소유하려는 방향으로 소비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새 것을 사는 대신 고쳐 쓰고 수선하면 덜 소비할 수 있고, 덜 버릴 수 있다. 나만의 세월이 깃들고 개성이 스며드는 것은 덤이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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