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4050보다 낫다, 7080 할매할배에 열광한 MZ세대 왜

중앙일보

입력 2021.04.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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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저렇게 우아하게 늙고 싶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상을 탄 배우 윤여정을 두고 요즘 MZ(밀레니얼·Z)세대들이 하는 얘기다. 세계적인 상도 상이지만 특유의 입담,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여유, 그러면서도 권위를 벗은 태도에 열광한다. “최고 말고 최중(中)이 되자”“젊은 사람들이 센스가 있으니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등 윤여정 어록이 도는 것은 물론, 윤여정의 매력에 스며든다는 의미의 ‘윤며들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 26일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수상 소식을 전한 배우 윤여정. 사진 베니티페어 어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 26일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수상 소식을 전한 배우 윤여정. 사진 베니티페어 어 공식 인스타그램

박막례·밀라논나…시니어 유튜브 스타들이 물꼬 터

정겨운 존재에 머물렀던 어르신들이 젊은 층과 공감하는 세대로 인식되고 있다. 공감의 기반은 호감이다. 한참 윗세대인 그들을 트렌디하다고,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쳐, 할머니 감성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란 뜻의 ‘할매니얼’ 신조어도 나왔다.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가 2019년 펴낸 책 표지. 사진 중앙포토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가 2019년 펴낸 책 표지. 사진 중앙포토

여기에는 유튜브 시니어 스타들의 공이 컸다. 메이크업부터 먹방, ASMR 영상까지 찍는 70대 할머니 박막례 씨의 유튜브 구독자는 130만 명을 넘어섰다. 남다른 패션 감각은 물론 인생 조언도 아끼지 않는 할머니 ‘밀라논나’ 장명숙 씨의 유튜브 구독자도 8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채널에는 유독 2030의 공감 댓글이 많다.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를 구독 중인 23세 대학생 B씨는 “나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열정과 남을 의식하지 않는 솔직한 모습이 좋다”며 “저보다 배나 오래 사신 분인데도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인기 비결”이라고 했다.

주로 패션 콘텐트를 올렸던 밀라논나 장명숙씨는 최근 '논나의 아지트'라는 고민 상담 콘텐트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밀라논나 유튜브 채널 캡처

주로 패션 콘텐트를 올렸던 밀라논나 장명숙씨는 최근 '논나의 아지트'라는 고민 상담 콘텐트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밀라논나 유튜브 채널 캡처

광고계 ‘블루칩’ 된 시니어

20대가 주로 찾는 쇼핑몰 '지그재그'의 광고 모델로 발탁된 윤여정. 사진 크로키닷컴

20대가 주로 찾는 쇼핑몰 '지그재그'의 광고 모델로 발탁된 윤여정. 사진 크로키닷컴

‘할매·할배’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광고업계서도 이들을 반긴다. 윤여정은 20대들이 즐겨 찾는 쇼핑몰 ‘지그재그’의 모델로 등장해 “니들 마음대로 사세요”라고 일갈하고, OB맥주 광고에선 “자신에게 솔직해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MZ세대들이 즐겨 찾는 햇반컵반의 모델로는 80세 나문희 씨가 등장해 추리게임을 펼치고, 2030 여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화장품(리더스 코스메틱) 광고에서도 80세 강부자 씨가 나섰다. 시니어 세대의 완숙한 목소리는 때론 신뢰감으로 통한다. 29일 공개된 KT의 새 광고 ‘DIGICO KT’에선 윤여정 씨가 목소리로 출연, “내 데이터는 내 나라에 둬야지. 클라우드 원더풀이다 원더풀”이라고 말한다. 홍재승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시니어 모델은 MZ 세대에게 낯선 재미를 주는 효과가 있다”며 “특히 윤여정씨 처럼 꼰대스럽지 않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시니어 모델은 전 세대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어 광고 모델로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젊은 세대 타깃으로 출시된 '햇반컵반'의 광고 모델 나문희. 사진 CJ햇반

젊은 세대 타깃으로 출시된 '햇반컵반'의 광고 모델 나문희. 사진 CJ햇반

할머니처럼 입을래, 느린 패션으로 ‘위로’

2030 사이에서의 할머니 감성이 인기를 끌며 덩달아 ‘그래니 룩’도 떴다. 할머니(granny)에 차림새(look)을 더한 단어로, 말 그대로 할머니 패션이다. 주로 손뜨게 니트, 꽃무늬, 편안한 실루엣의 의상들로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할머니 패션을 즐긴다. 니트 조끼는 지난해 가수 아이유·블랙핑크 로제 등 셀럽들이 입으면서 대유행했다. 패션 업계선 그래니룩 유행을 단순한 복고 트렌드가 아닌, 느린 패션에서 편안함과 안도감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보기도 한다. 느린 패션을 상징하는 그래니룩이 젊은 세대에게 ‘위로’라는 코드로 다가간다는 의미다.

사진 기반 SNS 인스타그램에서 #그래니룩 해시태그를 검색한 결과. 사진 인스타그램

사진 기반 SNS 인스타그램에서 #그래니룩 해시태그를 검색한 결과. 사진 인스타그램

4050 ‘꼰대문화’에 반작용도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MZ세대들이 바로 윗세대인 40·50세대에 대해 가진 반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윗세대인 6070에 호감을 갖는 것”으로 해석한다. 20대들에겐 부모님이나 직장 상사로서 매일 마주하는 4050 기성세대가 “라떼는 말야”를 외치는 ‘꼰대’로 비칠 수 있지만, 직접 부딪히는 연령대가 아닌 노년층은 아예 관계성 밖으로 나가 있는 이상적 존재라는 얘기다. 연륜에 따른 자신감도 마음을 끄는 포인트다. 28세 회사원 C씨는 “예전엔 삶의 단계가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식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요즘 20대들은 가치관에 따라 워낙 다양한 삶을 살다 보니 오히려 더 막막해하는 것 같다”며 “이미 일가를 이룬 진짜 어른을 답안지 삼아 ‘워너비’로 닮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다”고 말했다.

tvN드라마 '나빌레라'는 70대에 발레를 시작한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사진 tvN 홈페이지

tvN드라마 '나빌레라'는 70대에 발레를 시작한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사진 tvN 홈페이지

이번 주 종영한 드라마 ‘나빌레라(tvN)’는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하는 덕출(박인환)의 이야기를 그렸다. 덕출은 “뭘 할 때 행복한지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요즘 젊은 애들에게 미안해서 해줄 말이 없다. 열심히 살면 된다고 가르쳤는데 이 세상이 안 그래” 등의 명대사로 청춘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전달해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멘토가 사라진 시대, 의지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을 찾고 싶어 하는 MZ세대들이 시니어들을 무대 위로 소환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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