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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된 ‘영남 확장론’ 대 ‘호남 정통론’…“구태지만 계속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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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역주의 관련 논쟁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 이낙연 전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최근 지역주의 관련 논쟁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 이낙연 전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후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묻어둬야 할 것이 있다.”(이낙연 전 대표)

“지역감정을 누가 조장하는지, 이낙연 후보님 측 주장이 흑색선전인지 아닌지, 직접 듣고 판단해달라”(이재명 경기지사)

민주당 대선 경선 레이스 1·2위를 다투고 있는 두 사람은 26일에도 ‘백제 논쟁’을 이어갔다. 이 지사의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소위 백제, 호남 쪽이 주체가 돼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 (이 전 대표가) 나가서 이긴다면 역사이고 ‘내가 이기는 것보다 낫다’고 실제로 판단했다”(22일 본지 인터뷰)는 표현의 해석을 둘러싼 신경전이 사흘째 계속된 것이다.

이 지사 측은 발언이 담긴 인터뷰 녹음파일까지 공개하며 “떡 주고 뺨 맞은 격”이라는 입장을 폈지만 이 전 대표 측은 “‘영남 역차별’ 발언을 잇는 중대한 실언”이라는 의구심을 접지 않고 있다. 송영길 대표는 “다시 지역주의 강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만류하고 있고 다른 주자들도 “구태 정치”(박용진 의원)라고 눈총을 쏘고 있지만 큰 효과가 없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잠시 가라앉을 수는 있겠지만 두 사람의 호남 쟁탈전이 가열되고 있어 언제든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큰 갈등선”이라고 말했다.

李-李 호남 접전이 갈등 촉발

‘백제 논란’은 두 주자의 호남 지지율이 접전 양상에 접어드는 시점과 맞물렸다. 지난 14~15일 무등일보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한 대선주자 적합도 관련 여론조사에서 이 전 대표는 광주에서 34.7%를 얻어 30.1%를 얻은 이 지사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전남에선 이 전 대표가 42.3%의 지지율을 얻어 30.3%를 얻은 이 지사를 12%포인트 앞서기도 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재명·이낙연 광주·전남 여론조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재명·이낙연 광주·전남 여론조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여전히 이 지사가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지만 지난 6월까지 거의 모든 여론 조사에서 이 지사가 전 지역에서 이 전 대표를 앞선다는 결과가 나왔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여권에 정통한 한 정치컨설턴트는 “민주당은 여전히 호남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주자가 대선 후보가 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이 전 대표는 호남 연고에 기반한 정서에, 이 지사는 호남의 전략적 선택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2015년 온라인 당원제 도입 이후 권리당원 70만명에 달하는 전국 정당으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권리당원 중 30%(21만 여명)는 호남에 밀집돼 있다. 전체 유권자(4248만명·19대 대선 기준) 중 호남은 10%(427만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권리당원수에선 두번째로 많은 서울(15만 여명)보다도 현저히 큰 비중이다.

지난 5월 이낙연 전 대표는 광주 5.18묘역의 비석을 일일이 닦았다. 대선 출마를 위해 호남권 지지부터 다지는 차원이란 평가가 나왔었다. 페이스북 캡처

지난 5월 이낙연 전 대표는 광주 5.18묘역의 비석을 일일이 닦았다. 대선 출마를 위해 호남권 지지부터 다지는 차원이란 평가가 나왔었다. 페이스북 캡처

이 지사의 ‘백제 발언’을 이 전 대표의 호남 중심 행보에 대한 맞대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호남 방문 빈도를 크게 높이고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매개로 호남 표심에 호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호남 연고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도 ‘백제 발언’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호남이 군사정권에 지독한 차별을 당했다”고 말했다. 한 친문 재선 의원은 “전국적으로 열세인 입장에서 반등의 동력을 연고지인 호남에서 찾아야 한다고 판단한 거 같다”며 “이 지사의 호남 공략이 본격화되면 이 전 대표의 반응도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청대망론’ 찾는 윤석열…야권도 지역주의 논란 잠재

최근엔 서서히 경선구도가 드러나고 있는 야권에서도 연고주의가 주목받고 있다. 야권 주자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첫 민생행보로 충청권을 찾아 ‘충청대망론’에 대해 “저는 우리 지역민의 하나의 정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지역 정서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남권에 기반을 가진 유승민 전 의원이나 홍준표 의원 등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단 전망이 나온다.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6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묘역을 찾아 헌화 뒤 묘비를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6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묘역을 찾아 헌화 뒤 묘비를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이에 대해 윤광일 숙명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역주의는 크게 완화돼 본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여·야 모두 경선과정에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경향이 짙어질 여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정치학회장)는 “지역주의는 지난 대선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변수였다”며 “영·호남 주자 간 대결이 되면 본선에서도 지역주의적 선거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이라고 내다봤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정치학 박사)은 “정책 경쟁에서 주목받지 못하니 경선 주자들이 일종의 ‘마이너스 게임’을 벌이는 것”이라며 “지역적인 문화 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각기 다른 정치적 언어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공격하는 움직임이 전체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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