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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실업 심각해도 첨단 인력은 모셔간다|넘치고 모자라는 `89취업 전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첨단산업에 필요한 고급인력이 태부족인데도 대졸 실업자는 넘쳐나고 있다.
올 신규채용규모가 작년보다 전체적으로 6%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여 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건설·석유·탄광·운수업체 등 근로조건이 나쁜 업종에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있다.
교육제도 및 직업훈련이 급속한 산업구조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부분간 인력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구직난 속에 구인난을 겪고 있는 취업전선을 살펴본다.

<중기 인력난 더 심해>
◆구인난… 인력난이 가장 심한·첨단산업부문을 보면 2001년까지 학·석·박사를 합쳐 8만2천7백50명 외 첨단과학기술인력이 필요한데 비해 공급은 4만9천9백90명에 그칠 전망이다.
전자공학과의 경우 4년제 대학을 통틀어 올해 3천9백 명이 졸업 대상자인데 가전 4사의 요구인력만 1만명이 되고 있다.
또 석유화학업계는 삼성·현대 등의 신규 참여로 93년까지 3천여 명이 필요하지만 공급능력은 한계가 있어 대기업간에 낯을 붉히는 스카웃 전쟁이 벌어지기 예사다.
단순하고 힘든 일을 기피하려는 노동의식구조의 변화로 기능직·잡급직에서도 구인난이 두드러지고 있다.
작년 말 중소기협중앙회가 중소기업인력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중소기업의 기술인력 부족률은 무려 19·4 %에 이르고 있다.
올해는 부족률이 25 %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숫자로는 약 4O만명에 해당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매년 10∼15 %씩 늘어나고 있는데 비해 공고와 공업전문학교 졸업자수는 2∼3 %의 소폭 증가에 그쳐 수 년 내에 기술인력난이 해소될 전망이 별로 없는 상태.
단순기능직 인력의 부족사대는 더욱 심하다.
노동집약산업이 집중돼 있는 서울 구로공단의 경우 1년 사이에 1만5천여명이 감소,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기업들은 노사분규를 의식, 타 업체근무경력자는 채용을 꺼리고 고교졸업예정자만 찾고있다.
탄광업체에서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정책에 따른 폐광으로 1만여명이 실직했는데도 이들이 탄광에 재취업하지 않고 도시로 흡수돼 광원부족사태를 겪고 있다.

<광원도 재취업 꺼려>
실직탄광근로자는 적절한 전직훈련을 받지 못한 채 도시로 유입되고 있어 자칫 사회문제화 할 우려까지 낳고 있다.
기업들도 공장자동화를 추진하면서 상용근로자를 줄이고 임시 채용 근로자를 늘려 가는 추세다.
노동부에 따르면 3개월 이상 고용계약을 한 상용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용고용지수 (85년 1백 기준)는 작년 상반기 중 1백9·1에서 올 상반기에는 1백
7·4로 떨어졌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수 연구조정실장은 인력수급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재학중 전과를 쉽게 하고 ▲학사편입을 늘리며 ▲첨단산업 관련학과에는 기자재 설비지원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이 실장은 또 『직업훈련은 취업자의 전직훈련이 중심이 돼야하며 서독·일본처럼 고용보험제를 도입해 직업훈련보조기금을 만들어야한다』고 밝혔다.
장재성 (주)리크루트 정보실장은 『정부·기업·학교 등 3자로 구성된 산학협동위원회를 설치해 업종별 기업요구 인력을 정부가 예측하고 인원만큼 배출되도록 대졸정원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구직난…올해의 취업문은 지난해보다 더 좁아져 사상최악의 「바늘구멍」이 되고있다.
내년 2월의 대학졸업예정자는 전년보다 1만9천명이 는 18만5천명. 여기에 지난 8월 후기졸업자와 지난2월 이전 졸업자 등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취업재수생까지 합치면 30만명에 가깝다.
유학· 군입대 등을 뺀 순수 취업희망자만 2O만명이 넘을 예상이다.
반면 올해 대기업·은행 등 주요기업의 모집인원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6∼7 %씩 줄어 1백 대기업의 총채용 인원이 2만명에 그쳤고 중소기업·공무원·교직 등을 합쳐도 7만∼8만명에 불과해 산술적으로도 직장을 구할 수 있는 확률보다는 못 구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이 같은 현상은 졸업정원제 세대가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공급인력은 크게 늘었으나 경기침체와 임금압박 등에 따른 기업들의 감량경영에 기계화·자동화 추세가 겹치며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
지난 5일과 12일 실시된 대기업·은행공채의 경우 지난해 6·4대1의 경쟁률을 보였던 삼성·현대 등 4대그룹은 8·2대1, 7·6대1 이었던 은행은 11·1대1로 각각 경쟁률이 높아졌고 정부투자기관인 전기통신공사는 무려 1백41대1에 달하는 등 치열한 취업전쟁이 빚어졌다.
이 같은 취업 비상 속에 교직원들이 연고회사를 찾아 나서거나 기업인 초청설명회를 갖는 등 기존의 「연례행사」외에도 대학교 앞길마다 1천∼2천원에서 1만원까지 하는 각종 취업정보·문제집의 노점상까지 새로운 대학가의 풍속도로 등장했다.
대학들도 낟알 (국민대)·참빛 (광운대) 등 안내책자의 자체제작에 나섰고 홍익대는 올해 취업정보와 예상문제집을 아예 상· 하권으로 나눠 졸업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한다.
추천기회 자체가 줄어들자 학과별로 이를 모아 학생들이 성적순이나 장유유서 또는 제비뽑기 등으로 순서를 매기는 종합관리체제도 올 들어 부쩍 늘고 있고 일부 맹렬 학생들은 국·영문 졸업증명서 등 자신을 소개하는 서류를 들고 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며 로비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2월 H대 기계과를 졸업한 뒤 20개월 만인 지난달 S악기에 입사한 김모군 (27) 은 졸업 전 7∼8곳을 떨어진 뒤 아예 응시를 포기하고 1년여 동안 자격증 따기에 매달려 성공한 케이스다. -

<서울대도 서류탈락>
서울대 장학담당관실 송기형씨는 『취업에 가장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서울대에서도 올 해는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서류전형에서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졸 실업률이 전체실업률의 2배 가량인 5·3%(올 상반기)로 이 「고학력실업난」이 특히 심각한 가운데 여학생과 지방대출신에게 취업은 더욱 「좁은 문」이 되고있다.
지난해 대졸자 중 여성은 27·8%이나 4백55개 주요기업채용자 중 비율은 불과 4·3%. 취업률 자체도 34 %로 82년의 55 %에 비해 오히려 더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남녀고용평등법도 별무신통으로 ▲아예 원서교부를 않거나 ▲응시기회만 주고 면접에선 탈락시키는 등 2중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졸업을 앞둔 여대생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고용평등법 유명무실>
지방대 출신의 지난해 취업률도 56·6%로 서울의 7l·7%보다 크게 낮은 상태.
올해의 경우 우선 취업의 「선행지표」라고 볼 수 있는 기업취업에서 관련기업이 대학에 지원서를 보내주는 양 자체가 지난해보다 줄어들어 취업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각 대학은 이에 따라 교수들이 서울 등지로 출장, 로비에 나섰고 광주시·강원도 등은 공무원들이 기업체를 상대로 호소문을 보내거나 직접 찾아 나서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지방기업과 대학의 육성이 시급하다는 것이 공통된 여론이다.
한편 고졸자의 경우 실업계는 80 %가량의 비교적 높은 취업률을 보이고 있으나 인문고의 경우 45%만이 진학할 수 있고 나머지 55% 가운데 실제 취업률은 10%도 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길진?·민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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