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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아픈 역사를 상기시킨 싱하이밍 중국대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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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왕이 외교부장이 문 대통령의 팔에 손을 대며 말하는 장면. 장관급 인사가 상대국 지도자의 팔을 툭툭 치는 모습이 포착돼 외교적 결례 논란이 일었다. [CBS노컷뉴스 화면 캡처]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왕이 외교부장이 문 대통령의 팔에 손을 대며 말하는 장면. 장관급 인사가 상대국 지도자의 팔을 툭툭 치는 모습이 포착돼 외교적 결례 논란이 일었다. [CBS노컷뉴스 화면 캡처]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 대선 주자의 발언을 문제삼고 나선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명나라 사신들의 횡포가 극심했다. 태종 3년(1403년) 11월 조선에 화자(고자) 60명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태종은 겨우 35인의 화자를 선발해 보냈는데 태종실록은 이날 “임금이 서교에서 전송하니 환자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기록했다. 태종 7년에도 영락제는 “안남에서 화자 3000명을 데려왔으나 모두 우매하여 쓸 데가 없다. 오직 조선의 화자만이 똑똑하여 일을 맡겨 부릴 만하다”며 다시 300~400명의 환관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태종은 “이것들이 따로 종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항의하기도 했으나 기본 수요는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이덕일, 『조선 왕을 말하다』.

〈류성룡은 직접 수집한 정보를 들이대며 이여송의 과장을 반박하고 “명군이 후퇴하면 임진강 이북도 보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장세작 등 이여송의 부하들은 이빈을 발로 차며 류성룡 일행을 위협했다. 이후에도 류성룡이 전진을 종용하자 이여송은 발끈했다. 명군 진영에 군량과 마초 공급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류성룡과 호조판서 이성중을 병영의 뜰 아래 무릎 꿇리고 군법을 집행하겠다고 협박했다.〉 -한명기, ‘이여송과 모문룡’(「역사비평」에 수록).

〈위안스카이의 횡포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고종은 1887년 6월 박정양을 주미공사로, 심상학을 주영ㆍ독ㆍ러ㆍ프ㆍ벨기에 등 5국 공사로 각각 임명하여 파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위안스카이는 즉시 이홍장과 밀접하게 연락하여 공사 파견 사실을 청과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중히 힐책하고 공사의 파견을 중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조선정부는 이를 사과하고 박정양의 미국 파견을 중지시키고, 외국주재 5국 공사로 임명된 심상학도 위안스카이의 압력으로 병을 핑계로 부임을 회피하고 말았다.〉 -이양자, ‘위안스카이(袁世凱), ‘조선의 왕’으로 비유된 감국대신(監國大臣)’(「내일을 여는 역사」에 수록).

〈그는 본국에서는 군수급 후보자 정도의 직위였지만, 조선에서는 최고위급 청나라 관리로서 행세할 수 있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벼락출세를 해서 그런지, 위안스카이는 이후 10년 동안 조선에서 참으로 방약무인한 행동들만 일삼았다. 조선에 부임한 위안스카이는 마치 섭정왕 같았다. 그는 감국대신을 자처하며 조선 내정에 간섭했다. 말이나 가마를 타고 궁궐 문을 함부로 드나들었고, 조선 정부의 공식행사에서 언제나 상석에 앉았다. 무장한 채 궁궐 안까지 가마 타고 들어와 고종 임금에게 삿대질하기 일쑤였다.〉 김건흡, ‘조선의 쇠락과 위안스카이의 위세’(미주중앙일보에 게재).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7월 14일 자). 그러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중앙일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글을 보내왔습니다.

〈천하의 대세는 따라야 창성하다는 말이 있다. 중국은 이미 5억명에 가까운 중산층 인구를 가지고 있고, 향후 10년간 22조 달러 규모의 상품을 수입할 계획이다. 중한 무역액은 이미 한미, 한일 및 한-EU 간 무역액을 모두 합한 수준 가까이 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집적회로 시장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이른다. 한국은 약 80%의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싱하이밍, ‘한중 관계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7월 16일 자 중앙일보).

‘천하의 대세’를 따르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그 뒤에 상품 수입, 무역액, 시장, 메모리 반도체 수출을 언급합니다. 협박으로 들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싱하이밍 대사에게 17일 “주재국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외국 공관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양국 관계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가 젊잖게 꾸짖은 것으로 봐야 할지, 우리 스스로에게 ‘신중할 필요’를 적용해 저자세로 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찾아보니 선조실록에 이런 대목이 있네요. 이덕형이 “명나라군이 갖가지 민폐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하자 선조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괴롭지만 참아야 한다. 중국의 노기를 적발시키는 일이 있게 될까 염려된다.” 나라의 힘이 약할 때마다 중국에서 온 사신이나 장수가 횡포를 부렸습니다. 아픈 역사입니다.

싱하이밍 대사의 행보를 지적하는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의 글이 중앙일보에 실렸습니다. 신 센터장은 ‘중국 따르라는 노골적 압박 아닌가’라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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