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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보다 민주당 대표가 더 셌다”…대전 랩허브 탈락 후폭풍

중앙일보

입력

사업 제안은 대전시, 부지는 송도로 

바이오 창업 지원기관인 '케이(K)-바이오 랩허브'(랩허브) 사업을 정부에 제안한 대전시가 정작 전국 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공모에서는 탈락했다. 이에 허태정 대전시장을 포함한 대전 정치권이 할 일을 제대로 못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전사랑시민협의회가 대전시청 북문 광장에서 K-바이오 랩허브 유치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사랑시민협의회가 대전시청 북문 광장에서 K-바이오 랩허브 유치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대전시에 따르면 랩허브 사업은 당초 허 시장이 2019년 미국 보스턴 랩센트럴을 방문한 뒤 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에 건의했다.

그런데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이를 전국 자치단체 공모사업으로 추진했다. 공모에는 대전과 인천 등 10여개 자치단체가 참여했다.

중기부는 지난 9일 인천을 사업 대상지로 발표했다. 랩허브에는 치료제·백신 등 신약 개발 창업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비 2500억원이 투입된다. 연구와 생산 등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특징이다. 인천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지원 등으로 발표 전부터 유력 대상지로 주목받아 왔다.

 대전, 밥상 차려놓고 뺏겨

송 대표는 지난달 16일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인천시장 재직 시절 성과를 설명하며 셀트리온 추가 투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경제자유구역 투자 유치 등을 언급했다.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오른쪽)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가대표 바이오 창업기업 육성을 위한 'K-바이오 랩허브' 구축 후보지로 인천 송도를 선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오른쪽)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가대표 바이오 창업기업 육성을 위한 'K-바이오 랩허브' 구축 후보지로 인천 송도를 선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지도부는 대전시가 유치 의향서를 낸 이튿날인 지난 5월 26일에도 인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찾아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며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과 대전시는 지난 6일 대전에서 예산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완주 정책위원장은 "랩허브는 사업을 구상한 대전시가 원조"라고 말했다. 허 시장이 발표 당일 직접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나서기도 했다.

허 시장은 정부 발표 직후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정부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독자적으로 '대전형 바이오 랩허브'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해 12월 수립한 '2030 대전 바이오헬스 혁신성장 마스터플랜'에 따라 랩허브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시는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바이오클러스터 인프라와 바이오메디컬 규제자유특구 내 충남대병원 시설을 활용할 계획이다. 허 시장은 "향후 공모사업 평가 배점에 '지역 균형발전 가점'이나 사업 아이템을 제안한 자치단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전시민 "국회의장 등 맨 파워는 역대급인데"  

랩허브 유치 실패에 따른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시민들은 “대전시장은 물론 국회의원 7명, 구청장 5명 모두 민주당인 데다 국회의장까지 대전 국회의원 아니냐”며 “이들이 하는 일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랩 허브는 결국 밥상 다 차려놓고 남에게 뺏긴 것”이라며 “국회의원이나 구청장은 행사 참석해 얼굴만 내밀 생각만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운데)가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인천스타트업파크에서 열린 '2021 더불어민주당·인천광역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운데)가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인천스타트업파크에서 열린 '2021 더불어민주당·인천광역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영환(행정학박사)씨는 “정치적으로 보면 국회의장을 포함한 5선 의원, 법무부 장관 등 역대급 맨 파워를 가진 대전이 여당 대표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한 꼴”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대전시당은 인천시장 출신인 송영길 대표를 겨냥해 "여당 당 대표자가 나선 정치력 싸움 결과로 대전이 탈락한 것이라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면서 "대전이 가진 바이오 관련 인프라와 실력이 부족해 송도에 사업을 넘겨준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은 논평을 내고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갈등만 유발하고 수도권 편중만 심화시키는 국책사업 공모방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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