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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요기 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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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 감독을 지낸 요기 베라(1925~2015)는 이렇게 말했다. 1973년 메츠는 시카고 컵스에 9.5게임 차로 뒤져 지구 최하위를 달리고 있었다. 감독을 맡은 그에게 한 기자는 “시즌이 끝난 것인가”라고 물었고 요기는 이에 답했다. 뉴욕 메츠는 그해 시카고 컵스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의 말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회자했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공식 연설에서 이를 인용했다. 팝스타 레니 크라비츠는 1991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곡을 발표했고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의 포수 출신인 요기 베라는 명언 제조기로 불렸다. 그가 남긴 말들이 야구라는 스포츠를 넘어서 인생을 아울렀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홈페이지에 요기 베라의 명언을 따로 모아놓기도 했다. 『요기 북(The Yogi Book)』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그의 촌철살인은 요기즘(Yogism)이라 불리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요기즘은 국경을 넘나든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그의 말은 자주 인용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5월 특별연설을 통해 “(방역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며 “마지막까지 더욱 경계하며 방역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 4차 대유행기에 접어든 지금 문 대통령의 지난 말은 독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게 됐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돌아보면 코로나는 먼나라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말 청와대 5부 요인 오찬에서 “세계 각국이 한국의 방역 및 경제 역량,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의 우리 위상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더 긴밀하게 협력하길 원했다”며 방역 성과를 자화자찬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소비 진작용 2차 추가경정예산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델타 변이 유입에도 거리 두기 완화를 고집했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또 어떤가.

책장에서 『요기 북』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할 때가 찾아왔다. 요기 베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방망이를 휘두를 수 없다(You can’t think and hit at the same time)”고 했다. 방역과 소비 진작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