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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폭격에 울부짖는데 한쪽선 한가로운 해수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일 베이루트 남부가 폭격받는 장면

베이루트 남부는 집중 폭격을 받아 인적도 거의 끊기고 주민들도 대부분 대피해 텅 비어있다.

밤 10시경의 베이루트 시내의 한 음식점.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웃통까지 벗어던지고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치조직 헤즈불라간 충돌이 거세지고 있다. 양측은 3일 서로 상대의 수도에 대한 공격이나 초토화 가능성을 위협했다. 이스라엘은 막강한 공군력을 바탕으로 3일에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를 폭격했다. 히즈불라는 이에 대해 이스라엘 북부에 150여발의 로켓을 공격했다. 히즈불라의 이스라엘 병사 2명 납치로 시작된 이번 전쟁도 이미 24일째를 접어들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승리가 확실하고 실제로 그렇다. 최첨단 정밀 무기를 가진 이스라엘은 현재 레바논 남부를 초토화시켰다. 히즈불라의 남부 거점들을 대부분 장악해 나가고 있다. 국경서 레바논 남부 24km지점에 위치한 리타니 강까지 완전히 장악하고 히즈불라의 위협을 제거한 후 유엔 다국적 평화유지군에 이 지역을 넘겨준다는 계획이다.

이스라엘의 탱크와 1만여명의 지상군이 남부를 장악해나가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은 레바논 동부와 북부의 히즈불라 군사시설 등을 지속적으로 파괴하고 있고, 남부와 베이루트는 물론 중부를 잇는 도로들을 대부분 끊어놓았다. 남부의 히즈불라는 중.북부로 부터 지원이 끊겨 이제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다. 히즈불라는 결사항전을 선언해 최후까지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최정예 이스라엘군도 이미 40여명이나 사망했다.

하지만 지난 8일간의 레바논 출장 취재시 목격한 베이루트 시내의 분위기는 충격적이었다. 베이루트 남부 교외 시아파 지역은 주민들이 모두 대피하는 등 긴장이 고조돼 있지만 다른 지역은 평안하기만 하다. 베이루트 북부의 해변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삶은 옥수수를 파는 장삿꾼으로 붐볐다. 하루에도 수십차례의 이스라엘 폭격이 있어도 이곳은 다른 나라의 한 여름 해변과 다르지 않다. 베이루트 시내의 모습도 그렇다. 문을 닫은 곳도 많지만, 아직도 밤에는 술집에 자리가 없다. 맥주가 나오는 펍이나 여자들이 술 시중까지 하는 바 입구에는 술잔 모습이 네온 사인이 반짝인다. 이 곳에서 공습을 받고 있는 베이루트 남부까지의 거리는 불과 10km도 안된다. 초토화된 레바논 남부까지는 대부분 100km 전후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이는 시아파 히즈불라와는 달리 레바논내 기독교인과 수니파는 이번 전쟁을 '히즈불라의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의 남부 카나 마을 민간인 학살이후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히즈불라를 지지한다는 여론 조사도 나와있다. 하지만 총을 들고 히즈불라와 함께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겠다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아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레바논의 비극이다. 아직도 레바논 사회는 종파,정파,민족간의 갈등이 앙금져 남아있다. 15년전만에도 내전으로 서로 싸웠던 기억이 아직은 지워지지 않은 모습이다.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거쳐 암만 그리고 카이로로 돌아오는 동안 많은 레바논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골아픈 국내를 벗어나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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