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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척결 의지 민사서 재천명|박종철군 유족 승소판결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5공의 운명을 재촉했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관련, 박군 유가족에게 국가와 가해 당사자들이 연대해서 1억3천여만원을 배상토록 한 판결은 민사사건을 통해서도 사법부의 고문척결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재판부가 박군 사건을 국가공권력의 조직적 폭력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비교적 폭넓게 받아들인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직 상급심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번 판결로 박군 사건은 일단 민·형사상 처리가 마무리 됐다고 볼 수 있다.
◇배상 책임=재판부는 ▲고문경관 5명의 박군 고문치사에 따른 직접책임 ▲치안본부 대공분실 간부들의 범인은폐·축소조작 책 임▲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의 사인조작 지휘책임등 세 부분으로 나눠 인정하고, 각각 국가와의 연대책임을 지웠다.
이 판결에 따라 국가가 유가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주고 국가는 이들 책임자들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해석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유가족들의 장세동 전안기부장·이해구 전안기부차장·김성기 전법무부장관·이영창 전치안본부장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이들이 박군 고문이나 범인축소조작 및 사후처리에 있어 관계기관대책회의 등을 통해 불법행위를 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특히 이전치안본부장은 박군 추모행사개최를 금지하고 이 추모회에 참가하려고 한 시민들을 연행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이는 당시 치안본부장으로서 관계법령에 따라 정당한 직무집행을 한 것으로 간주,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배상액수 계산=재판부는 박군이 사고당시 만21년9개월의 나이로 대학3학년이었으므로 생존했을 경우 88년2월 대학졸업 후 2년6개월간 군복무를 마치는 90년9월1일부터 대졸근로자의 최소한 가동연한인 55세가 끝나는 2021년 3월까지 87년의 대졸학력 근로자 월평균초임 36만7천1백원을 지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손해배상계산기준인 호프만계산법에 따라 박군이 생존했을 때의 생계비 40%를 감액해 박군 가동능력에 대한 금전적 평가액을 4천3백90만원으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위자료부분에 대해서 『박군이 수사기관에 연행돼 철저히 외부와 고립된 곳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무수한 폭행과 구타를 당한 것은 물론, 저항조차 할 수 없도록 결박된 상태에서 물고문이라는 조직적 폭력과 가혹행위로 사망하게 되고 사건발생이후에도 진상이 은폐·축소됨으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이 같은 정신적 손해를 금전으로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 액수는 사건발생경위 및 가혹행위방법·잔혹성과 결과은폐조작행위의 기만성, 그밖에 원고들의 신분관계·연령·직업·재산정도 등을 고려해 정했다.
이러한 계산에 따라 위자료로 박군 본인 3천만원, 부모 각 2천만원, 형제 2명에게 각 9백만원씩 모두 8천8백만원을 지급토록 했다. 박군 본인에 대한 위자료는 부모들이 상속받게 된다.
◇기타=원고가운데 부천서 성고문 사건피해자 권인숙양, 김근태씨 부인 인재근씨, 박군의 범국민추도위원회위원장 김동완목사, 박군 학우 박종운군 등 4명의 위자료 청구는 박군과 특별한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기각됐다.
재판부는 이밖에도 박군 사건 직후 치안본부에서 유가족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주택자금 3천만원, 노후대책비 3천만원, 부채청산비 3천만원, 장례비 5백만원 등 모두 9천5백만원을 지급한 것은 손해배상액의 일부로 볼 수 없어 이번 손해배상에서 감액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이와 함께 유가족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의한 것에 대해 박군이 단순쇼크사 했다는 거짓설명을 믿고 응한 것으로 유가족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유가족들에게 유리하게 판단했다..

<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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