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집값 폭등하자 중국의 해법...실거래가 모두 공개 금지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왕징 지역 아파트 전경. 박성훈 특파원.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왕징 지역 아파트 전경. 박성훈 특파원.

주말 베이징 시내 아파트 단지 앞에는 부동산 영업 직원들이 진을 친다.

코로나 꺽이자 中 부동산 급등 천태만상 #청두선 가격 내렸다는데 실거래가 그대로 #"중앙정부 뜻 따라 가격 초과 거래 미공개" #선전선 “참고 가격 초과하면 대출 불가” #베이징 부동산 업체 “다운계약서가 99%”

입구에 대기하고 있다가 매매가가 적힌 전단지를 나눠주는 식이다. 뭔가 싶어 눈이라도 마주치면 곧바로 말을 걸어온다. 코로나19의 위세가 꺾인 중국에서 부동산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베이징 왕징의 한 부동산. 160㎡ 면적의 아파트가 매매가 1180만위안(20억 여원)에 나와 있다. 박성훈 특파원

베이징 왕징의 한 부동산. 160㎡ 면적의 아파트가 매매가 1180만위안(20억 여원)에 나와 있다. 박성훈 특파원

실제 베이징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름세다.

중국부동산업협회가 지난 1일 발표한 ‘베이징 주택 시장 최신 상황’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아파트 매매 평균 단가는 1㎥당 6만7800위안(1187만원)으로 전달 대비 2.97%, 전년 동기간 대비 8.2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임대료도 월 7691위안(134만원)으로 5월에 비해 3.76%, 1년 전과 비교하면 24% 급등했다.
베이징 아파트값은 서울을 넘어섰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일, 서울의 6월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1억4283만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같은 시기 베이징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799만 위안(13억9944만원)으로 조사됐다. 서울보다 22.4% 더 높은 액수다.

베이징 왕징 30평대, 30억원 육박 

체감 격차는 더 크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지역 아파트의 경우, 방 세 칸짜리 면적 144㎡의 아파트의 매매가가 30억 원에 육박한다. 1㎡당 평균 11만 위안(1926만원)으로 1평(3.3㎡)당 6300만원 선이다.

4일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중개업체 롄쟈(?家) 어플에 올라온 베이징 왕징 지역 아파트 시세. 방 3칸에 면적 144㎡인 아파트의 매매가는 1728만위안(30억 2659만원)이다. 면적은 144㎡로 나오지만 아파트 내부 실제 크기는 한국의 30평형 대와 비슷하다. 124㎡ 면적은 1398만 위안(24억4859만원)으로 돼 있다. [롄자 어플 캡쳐]

4일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중개업체 롄쟈(?家) 어플에 올라온 베이징 왕징 지역 아파트 시세. 방 3칸에 면적 144㎡인 아파트의 매매가는 1728만위안(30억 2659만원)이다. 면적은 144㎡로 나오지만 아파트 내부 실제 크기는 한국의 30평형 대와 비슷하다. 124㎡ 면적은 1398만 위안(24억4859만원)으로 돼 있다. [롄자 어플 캡쳐]

명문대 진학률이 월등한 학교가 모인 천안문 서쪽 시청구의 아파트는 평당 1억 원이 넘었다.
과열 조짐에 중국 정부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쓰촨성의 성도 청두시. 2018년 분양한 아파트 러톈셩위안(樂天聖苑)은 하자없이 깔끔한 아파트로 인기를 끌었다. 중국 부동산 어플 안쥐커(安居客)를 통해 확인되는 매매가는 5월 10일 기준으로 1㎡당 3만9205위안(686만원).

그런데 5월 14일부터 값이 떨어지기 시작해 6월 말 기준 1㎡당 2만5364위안(444만원)으로 한 달여 만에 집값이 40% 가까이 떨어졌다.

청두 아파트 매매가. 5월 10일 기준 1㎡당 3만9205위안(686만원)에서 6월 30일 2만5364위안(444만원)/㎡으로 한 달 여 만에 집값이 40% 가까이 떨어졌다. [안쥐커 캡쳐]

청두 아파트 매매가. 5월 10일 기준 1㎡당 3만9205위안(686만원)에서 6월 30일 2만5364위안(444만원)/㎡으로 한 달 여 만에 집값이 40% 가까이 떨어졌다. [안쥐커 캡쳐]

현지 부동산 업체 문의 결과 “실제 거래 가격은 3만6000~4만 위안으로 큰 변동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실거래가를 공개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외견상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거래가, 온·오프라인 모두 공개 금지” 

5월 13일 청두시 부동산협회가 내부망을 통해 중개소에 통지한 문건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협회 측은 중개업체들에 “부동산 투기 방지에 힘쓰는 중앙정부의 뜻을 뒷받침하기 위해 온ㆍ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우리 시가 정한 주택 거래가 최고 한도를 초과하는 거래가를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인터넷 사이트, 모바일 앱, 위챗 계정, 동영상 플랫폼 등 온라인을 비롯해 부동산 사무실 입간판, 홍보 판촉물 등 어떤 방식을 통해서도 실거래가 공개를 금지시켰다.

러톈셩위안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게 고지되기 시작한 것도 통지가 나온 다음 날부터였다. 높은 거래 가격이 투기 심리를 자극한다고 판단한 정보 통제 조치다. 5월 기준 청두시의 중고 주택 단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6.1% 증가했다.

청두시 부동산협회는 중개소에 통지한 문건에서 “우리 시가 정한 주택 거래가 최고 한도를 초과하는 거래가를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박성훈 특파원

청두시 부동산협회는 중개소에 통지한 문건에서 “우리 시가 정한 주택 거래가 최고 한도를 초과하는 거래가를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박성훈 특파원

명칭은 ‘참고가격’, 실제론 ‘법정 상한선’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며 가장 빠르게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 선전에선 더 강도 높은 조치가 시범 실시되고 있다.

선전시 주택건설국은 지난 2월 8일 시내 3600여개 단지를 대상으로 아파트 1㎡당 ‘참고가격’을 발표했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아파트 가격을 제시한 것이다.

참고가격, 기준가격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를 초과할 경우 은행 대출까지 제한되는 사실상 강제 기준이었다.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시 전경. 선전시는 23개월 연속 집값이 상승하며 중국 전역에서 가장 빠르게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EPA=연합]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시 전경. 선전시는 23개월 연속 집값이 상승하며 중국 전역에서 가장 빠르게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EPA=연합]

대출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은 같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 부채 상환 능력에 근거하는 데 비해 중국은 아파트값의 상한선을 정해놓고 대출을 연동시켰다.

정부가 용인하지 않으면 가격 자체를 올릴 수 없다는 직접적인 개입 방식이다.

효과는 강력했다. 참고 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낮다 보니 거래가 절반 이상 줄었다.

사람들은 정부 규제가 완화될 때까지 기다려보자며 관망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리위쟈(李宇嘉) 광둥성 주택 정책 연구원은 “2년 만에 처음으로 선전의 주택 가격이 하락한 것은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편법은 끊이지 않는다.

선전의 한 부동산에서는 실거래가를 과일로 표시해 호객을 하다 적발됐다. ‘두리안 1개(1000만 위안, 17억 5000만 원), 바나나 1개(100만 위안)’가 그려진 광고판을 점포 앞에 걸었다. 올려받고 싶은 매도자나 흥정을 하려는 매수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업소는 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고 1주일간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

선전의 한 부동산에서는 실거래가를 과일로 표시해 호객 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두리안 1개 1000만 위안(17억 5000만 원),바나나 1개 100만 위안’이 그려진 광고판을 점포 앞에 걸었다. [웨이보 캡쳐]

선전의 한 부동산에서는 실거래가를 과일로 표시해 호객 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두리안 1개 1000만 위안(17억 5000만 원),바나나 1개 100만 위안’이 그려진 광고판을 점포 앞에 걸었다. [웨이보 캡쳐]

중국식 다운계약서 집값 7억에 인테리어 12억원

베이징의 한 부동산 업체는 “집 매매할 때 다운계약서로 하는 사람이 99%”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9월 작성된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다운계약서. 실제 거래가격 (아래)은 1130만 위안(19억7900만원)인데 당국에 제출하는 ‘가짜’ 계약서 상에는 매매가를 445만 위안(7억7900만원)으로 표시해 실거래가의 39.3%에 불과했다. 나머지 685만 위안(12억원)은 인테리어 비용과 각종 설비 비용으로 표시했다. 박성훈 특파원

지난해 9월 작성된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다운계약서. 실제 거래가격 (아래)은 1130만 위안(19억7900만원)인데 당국에 제출하는 ‘가짜’ 계약서 상에는 매매가를 445만 위안(7억7900만원)으로 표시해 실거래가의 39.3%에 불과했다. 나머지 685만 위안(12억원)은 인테리어 비용과 각종 설비 비용으로 표시했다. 박성훈 특파원

본지가 입수한 다운계약서를 보면 실제 계약서에는 아파트 값이 1130만 위안(19억7900만원)으로 돼 있다. 하지만 당국에 제출하는 ‘가짜’ 계약서상에는 매매가가 445만 위안(7억7900만원)으로 실거래가의 39.3%에 불과하다. 나머지 685만 위안(12억원)은 인테리어 비용과 각종 설비, 가구 등으로 표기돼 있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매도자는 매매 차익의 20%에 해당하는 개인소득세와 토지증치세 5.3%를 내야 하는데 보통 다운계약서를 통해 차익이 없게 만들어 25% 가까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