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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불법 시술소에 경찰 '넘버2'가…홍콩 들쑤신 '안마 스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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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초이친팡 홍콩 경찰 초대 국가보안처장(오른쪽)은 지난 2월 캐리람 행정장관으로부터 국가 안보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는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홍콩 정부망]

초이친팡 홍콩 경찰 초대 국가보안처장(오른쪽)은 지난 2월 캐리람 행정장관으로부터 국가 안보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는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홍콩 정부망]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 경찰 수장의 추문에 홍콩이 들썩이고 있다. 홍콩 경찰청 국가안보처장이 불법 안마시술소에 있다가 경찰의 불시 단속에 적발됐다. 망신스런 소식은 한 달 넘게 숨겨졌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보안법에 대한 불만이 잠재된 홍콩, 은폐될 뻔한 사건은 내부자의 고발로 한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경찰 2인자, 안마소 불시단속 중 적발 #당국 쉬쉬 했지만 언론이 결국 폭로 #불법은 없다면서도 세부사항 비공개

 홍콩 경찰 국가안보처장 초이친팡(蔡展鵬). 2019년 경찰 경비대 책임자로 송환법 반대 시위 진압을 지휘한 뒤 지난해 7월 보안법 시행 함께 그는 초대 처장에 임명됐다. 미국 정부는 지난 1월 그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홍콩 경찰청 홈페이지]

홍콩 경찰 국가안보처장 초이친팡(蔡展鵬). 2019년 경찰 경비대 책임자로 송환법 반대 시위 진압을 지휘한 뒤 지난해 7월 보안법 시행 함께 그는 초대 처장에 임명됐다. 미국 정부는 지난 1월 그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홍콩 경찰청 홈페이지]

초이친팡(蔡展鵬). 그는 현재 홍콩 경찰의 상징적 존재다. 1995년 경찰에 들어온 뒤 엘리트 코스를 거쳐 2019년 경찰 경비대 책임자로 격렬했던 송환법 반대 시위 진압을 지휘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보안법 시행과 함께 그는 경찰 국가안보처의 초대 처장에 임명됐다. 청장에 이은 서열 2위, 가장 유력한 차기 청장 후보 중 하나였던 그의 손에 모든 홍콩 경찰의 보안법 수사가 거쳐갔다. 미국 정부는 지난 1월 그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고,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건 지난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단독 보도를 통해서다. 초이 처장이 무면허 안마시술소 단속 과정에서 적발돼 한 달 가까이 직무에서 물러나 있다고 폭로했다. 중요한 건 크리스 탕(鄧炳强) 홍콩 경찰청장의 확인을 거쳐 보도했다는 점이다. 탕 청장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밝히진 않았지만 보안법 최고 책임자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홍콩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보안법 책임자가 불법 행위를 했을 가능성과 은폐 시도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 등의 이유로 사주(社主)까지 수감된 홍콩 빈과일보(苹果日報)가 선두에 섰다. 경찰이 구체적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안마 시술소에서 6명의 여종업원이 체포됐다는 게 확인됐다.

홍콩 경찰은 지난 3월부터 두달 동안 13건의 무허가 안마시술소를 단속했는데 이 중 하나였다. 체포된 여성 중 상당수는 성매매 혐의를 받았다.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그가 불법 성매매와 연루된 됐을 의혹이 짙어졌다. 초이 처장이 지난 3월 갑자기 자신이 소유한 고급 주택의 은행 대출을 일시 상환한 것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인터넷 매체 '홍콩01'은 완차이 지역에 있는 베트남식 안마시술소로 알려진 'VIET SPA'를 보안처장이 경찰에 적발된 업소로 지목했다. 기자들이 시술소를 취재하는 모습. [홍콩01 캡쳐]

인터넷 매체 '홍콩01'은 완차이 지역에 있는 베트남식 안마시술소로 알려진 'VIET SPA'를 보안처장이 경찰에 적발된 업소로 지목했다. 기자들이 시술소를 취재하는 모습. [홍콩01 캡쳐]

그가 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안마시술소도 확인됐다. 완차이 지역에 있는 베트남 안마업소 ‘VIET SPA’였다. 인터넷매체 홍콩01은 다소 허름한 건물에 복도엔 출입문만 있고 바깥 창문은 모두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내부 상황을 아는 A씨는 “방이 6개가 있는데 모두 개별 욕실이 있다”며 “베트남 여성들이 앞뒤가 많이 팬 옷을 입고 일을 하고 양복을 입은 사람, 외국인, 중년 남자 등 다양하게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업주가 운영하는 시술소는 3곳, 이 업소는 홍콩 인터넷 성인 사이트에 요금ㆍ서비스ㆍ사진 등을 올려 호객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18일 홍콩 경찰이 보안처장 안마시술소 적발 사건에 대한 예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불법이나 부도덕한 일은 없었다면서도 적발 당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SCMP 캡쳐]

지난 18일 홍콩 경찰이 보안처장 안마시술소 적발 사건에 대한 예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불법이나 부도덕한 일은 없었다면서도 적발 당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SCMP 캡쳐]

첫 폭로가 나온 지 일주일 만인 지난 18일, 홍콩 경찰이 뒤늦게 수사 진행 상황을 발표했다. 조직범죄 및 삼합회 수사과 황웨이(黃維) 총경은 “지난 3월 말 완차이의 한 시술소를 경찰이 급습해 6명의 여성을 매춘 혐의로 체포했다”며 “이 과정에서 그 안에 초이 처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가 불법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거나 부도덕한 일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처음 공개했다. 방점은 문제가 없다는 데 찍혔다. 황 총경은 “시술소에 가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며 경찰로서의 청렴함을 고려해 조사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홍콩법상 무허가라 하더라도 안마시술소 출입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의 질문이 쏟아졌다. 발견 당시 그가 어떤 상태로 있었고, 왜 거기에 갔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몇 차례나 방문했는가 등등. 하지만 “수사 마무리 전까지 세부사항을 공개할 수 없다”며 어떤 답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 달 이상 발표가 늦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충분한 조사가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VIET SPA' 업주가 운영중인 또다른 무허가 안마시술소.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만 마주보는 구조다. [빈과일보 캡쳐]

'VIET SPA' 업주가 운영중인 또다른 무허가 안마시술소.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만 마주보는 구조다. [빈과일보 캡쳐]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중간 수사 발표는 오히려 여론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홍콩 민주당 로킨헤이(羅健熙) 주석은 “보도가 난 뒤 경찰이 시인한 것부터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라며 “그런 경찰의 자체 조사 결과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냐“고 일갈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홍콩 민간인권전선은 “불법은 불법이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동일한 법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안처가 시위대에 적용했던 법 잣대는 온데간데없고 보안처장 수사가 유야무야 되고 있음을 직격했다. 홍콩 명보(明報) 역시 “오늘날 홍콩의 법은 폭동 행위를 증명하지 못해도 폭동 현장에 있었다면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며 ”성매매를 하는 마사지 업소에 우연히 나타나는 사람은 없다”고 공격했다.

경찰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형사 처벌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알버트 룩 홍콩 변호사는 “무면허인 줄 알면서 지속적으로 방문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공직기강 비위 혐의로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13년 주류 판매 허가가 없는 레스토랑에서 술과 식사 할인을 제공받은 경찰 고위 간부가 공직자 비위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BBC는 독립적인 조사를 위해 홍콩의 반부패 수사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나 독립감찰경찰처리위원회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변호사 출신인 친정부 성향의 폴 쓰(謝偉俊) 의원은 “무허가 안마시술소에 방문하는 건 무단횡단만큼도 심각하지 않다”며 “이번에 일어난 일은 국가 안보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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