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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영재」 길을 열어주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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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과학교육에 종사하고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볼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수출도 세계에서 10대국 수준에 들어 동양의 4마리 용 가운데 한 마리로 불리게 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과는 정반대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과학학습의 성취도는 좋다고 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 공동 연구된 과학교육 성취도검사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과학성취도는 국민학교에서는 상위권에 속하고, 중학교에서는 중위권이고, 고등학교에서는 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나라의 앞날을 이끌어갈 과학도를 육성하는 일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 보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민학교에서상위권에 속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하위권에 속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근본적으로는 과학적 소양이 없다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교육방법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국민학교에서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공부에 매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공부하기 때문에 성취도가 높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서는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틀에 박힌 학습을 하게되다 보니 잠재력이 있어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창의력이 있어도 사용해 보지 못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고도의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과학학습의 성취도가 낮아지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번 문교부가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주관한 제1회 전국고교생 수학·과학경시대회는 고등학교 수업체계의 암기위주의 단편적 지식주입방식을 반성하고 새로운 과학교육의 모델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
필기·실험·면접 등 3차례 나눠 실시된 시험에서 학생들은 4개의 답안 중에서 1개를 선택하는 기계적 평가를 받지 않았다.
학생들은 사실·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고도의 응용능력·전위능력·해석능력을 측정하는 필기시험을 치렀다.
이들 중 어떤 문제들은 최소한 30분에서 45분이 소요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경시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실험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교육의 목표에는 지적영역 뿐 아니라 정의적 영역에 속하는 태도·흥미 및 신체적 영역에 속하는 재치·기능의 개발도 중시되기 때문에 이것들을 측정하는 실험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사실에 대한 왕성한 지적호기심과 신체를 움직여 대상을 조작하는 실제적 실험이야말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실험을 통해 아무리 간단한 공식이나 결론이라도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구와 정밀한 측정과 정신·신체적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알게 됐을 것이다.
이 경시대회로 발굴된 수학·과학에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은 앞으로 계속하며 그 재능을 길러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과학을 이끌어갈 일꾼이 되리라고 믿으며 이중에서 대망의 노벨상수상자가 탄생될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분야의 영재를 발견하고 이들의 성장을 돕기 위한 경시대회는 일찍이 다른 공업선진국에서 오래 전부터 실시하고 있다.
1894년 헝가리에서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물리·수학경시대회를 효시로 해서 1959년에는 헝가리·폴란드·체코·소련 등의 동구권국가들이 최초로 국제적인 수학경시대회를 실시한 후 지금은 서방세계까지 포함, 49개국이 이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여러 학술진홍재단 등에서 주관하는 수많은 경시대회가 있다.
이들 나라들은 경시대회에 많은 상금과 명예를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경시대회는 그 자체만으로 전체 과학교육의 발전에 기여하는데 한계가 있다.
지속적인 과학의 발전은 모든 국민이 과학에 대한 애정을 갖고 학생들이 「과학하는 정신」을 생활화할 때 튼튼한 기초를 갖게 된다.
학교교육에 있어 실험·실습·탐구중심의 질 높은 수업방법과 함께 우수한 교원을 확보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재정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경시대회의 결과로 우리들은 수학·과학에 재능이 뛰어난 학생을 발굴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과학교육방법의 문제점이 개선된다면 국제적으로 하위권에 속하는 수모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재력을 발휘하고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더욱더 여유 있는 교육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준비에 어쩔 수 없이 매달려야 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쉽게 개선되지 않을 전망이고 보면 경시대회를 통해 발굴한 영재가 입시사정에서도 걱정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특전을 부여하는 방법도 적극 모색돼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비단 과학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나라 교육에 있어서 모든 교과목에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수학·과학 경시대회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전 교과목의 교수·학습방법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신희명<서울대 과학교육연구소장·물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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