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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살인 번식을 위한 또다른 본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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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웃집 살인마

원제: The Murderer Next Door
데이비드 버스,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398쪽, 1만2000원

미국의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이웃을 살해한 의혹을 받고 있는 남자와 어색하게 공존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베일을 벗지 않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가 환상 속의 살인자였다면,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는 그것은 현실적이다.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이에게 목숨을 잃는 일이 현실에서 훨씬 빈번히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연쇄살인범이 살인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하다. 살인 사건 피해 여성의 과반수는 남편.애인 등에게 살해됐다. 저자가 전세계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남성의 91%, 여성의 84%가 적어도 한 번은 누군가를 살해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최근 서울에 사는 한 프랑스인의 집 냉동고에서 영아 시체 두 구가 발견된 사건은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그러나 옛날엔 영아 살해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모든 문화권에서 영아 살해의 흔적은 남아 있다. 결함을 타고나거나 자식이 많아 더 낳기 부담스러울 때 영아 살해는 종종 일어났다. 인간은 자식을 키우는 데 어떤 짐승보다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기에 진화 가능성이 없는 자손은 제거했던 것이다.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렇게 살인 심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우선 가해자의 75%가 남성이다. '번식 경쟁'이 가장 큰 이유다. 남성들은 경쟁자를 제거해 자신과 배우자를 보호하고 경쟁자가 아내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직접 아이를 낳지 않으므로 친자를 확인할 길이 없었던 남성에게 살인은 남의 씨앗에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는 일을 방지하는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따라서 살인자 비율은 남성의 번식력이 왕성한 15세 무렵에 상승해 20대에 최고점을 기록하며 40대에 접어들면 크게 떨어진다.

어떤 남성들은 배우자를 붙들어두기 위해 아내를 학대하거나 옴짝달싹 못하게 통제한다. 이별 후 비슷한 수준의 여자를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직자 남성의 경우 증상이 더 심하다. 폭력 남편과 간신히 헤어진 뒤라도 안심하기 이르다. 배우자 살해는 대부분 결별 1년 이내에 일어나니까.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어떤 여자들은 살인을 택한다.

살인 사건의 검거율은 69%. 강도 사건의 검거율(14%) 등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결국은 감옥행이다. 이렇게 옛날 사회와 달리 살인으로 득 볼 일 없는 현대의 인간이 여전히 살인 본성을 품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인류가 아직 현대의 환경에 맞게 진화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살인이 피할 수 없는 본능은 아니란다. 인류는 협동.이타주의.화해.우정.동맹.희생 등의 본성도 지녔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폭력의 극단적 형태인 살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심리는 섬뜩하면서도 유용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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