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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수억원 번다…벼락거지·벼락부자 운명 쥔 'GTX 로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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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김포·인천 검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광역급행철도(GTX) D 노선의 강남 직결과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등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포·인천 검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광역급행철도(GTX) D 노선의 강남 직결과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등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 어디서든 서울 강남까지 30분 안에 연결한다는 취지로 추진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지역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올해 GTX 정차역으로 언급된 지역의 집값은 많게는 수억원 이상 급등했다. 'GTX 로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값 상승의 확실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GTX역에서 멀어진 지역의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GTX-C노선 우선협상자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선정되면서 지역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창동, 광운대, 청량리 등 기존 GTX-C노선 10개 역에 왕십리역과 인덕원역을 추가 정거장으로 제안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GTX-C사업 입찰 공고를 내면서 최대 3개 역을 추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왕십리역, 인덕원역 인근 집값은 들썩이고 있다. 올해 들어 집값이 크게 올랐는데도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지난 6일 전용면적 84.98㎡(25층)가 16억3000만원에 거래된 경기 의왕시 포일동 인덕원푸르지오엘센트로에는 20억원 짜리 매물이 등장했다. 2019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의 해당 면적 분양가는 5억2800만~5억6800만원. 올 초까지만 해도 거래가 10억~12억원 선에서 이뤄졌는데 GTX 정차역 설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반면 의왕(의왕역), 안산(상록수역), 동두천 등 정차역 설치를 기대했지만 이번에 빠진 지역의 주민은 동요하고 있다. 동두천시는 GTX역 유치를 위해 범시민 서명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에 정차역이 추가될 가능성은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선 연장에 따른 사업비를 지자체에서 부담하겠다며 여전히 추가역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의왕역의 경우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의왕시간의 협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추가로 신설될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도. 국토교통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도. 국토교통부

신설역 주변 지역의 반발도 있다. 이미 정차역으로 확정된 청량리역과 과천역 일대 주민들은 왕십리역과 인덕원역 추가 설치에 대해 "짧은 거리에 추가로 역이 건설되면 '급행열차'가 아닌 '완행열차'로 전락할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GTX 정차역으로 인한 집값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청량리역 인근 한 공사현장에는 'GTX 왕십리역 신설 반대'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하기도 했다. GTX-C 노선이 지하로 통과하는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안전과 진동 문제 등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지난11일 오후 은마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나온 입주민들이 한국교통연구원이 있는 세종국책연구단지 앞에서 GTX-C 노선의 단지 관통을 반대한다며 시위하고 있다. 뉴스1

지난11일 오후 은마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나온 입주민들이 한국교통연구원이 있는 세종국책연구단지 앞에서 GTX-C 노선의 단지 관통을 반대한다며 시위하고 있다. 뉴스1

김포와 인천 검단 지역에서는 GTX-D노선이 강남 직결이 아닌 김포~부천(김부선) 구간만 통과할 가능성이 커지자 연일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GTX-D 노선의 연장 여부가 담길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2021~2030년)'가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된다. 이달 중 국토부 철도산업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김포와 인천은 물론 서울 강동구와 하남시까지 가세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이들 지역 집값이 또 한 번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

김남국, 김철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화섭 안산시장이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수도권 광역급행 철도(GTX)-C 안산 연장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김남국, 김철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화섭 안산시장이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수도권 광역급행 철도(GTX)-C 안산 연장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GTX의 당초 취지는 급행 철도망을 통해 수도권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수요가 수도권 외곽으로 분산될 경우 자연스럽게 집값도 안정을 찾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GTX가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되고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당초 GTX 추진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부실했고, 계획이 발표된 이후에는 지역 민원에 따라 추가 정차역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 혼란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처럼 꼬인 실타래를 풀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자체와 주민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기도,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 입장에서는 GTX가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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