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확대경] 호랑이 잡은 '김성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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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벤치에는 김성근 감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리는 김성근 감독에게 졌다."

기아 관계자들이 한숨을 쉬며 분석한 패인이다. 치밀한 데이터 야구를 앞세운 김성근 전 LG 감독의 분신 세명이 SK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만신창이 LG를 이끌고 우승 문턱에까지 올라갔던 '김성근 야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SK 조범현 감독은 김성근 사단의 적자(嫡子)다. 까까머리 충암고 시절부터 OB 선수, 쌍방울 코치 시절까지 김성근 감독의 수제자였다. 포수 출신이어서 김감독의 데이터를 가장 많이 접했고 관리도 했다. 돌다리의 한계 하중을 과학적으로 재고 나서야 강을 건너는 김성근식 야구를 펼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리즈 3승 무패라는 결과의 이면에는 조감독의 무수한 데이터가 흐르고 있다.

SK의 포수 박경완도 또 하나의 김성근이다. 철저한 무명이었던 그는 쌍방울에서 김성근 감독과 조범현 당시 배터리 코치에게 발탁돼 집중 조련을 받고 야구에 눈을 떴다. 그 노하우로 현대로 이적해 팀을 우승시켰고 조범현 감독의 부임과 함께 SK에서 한 배를 탔다. 2차전 선발투수 트레비스 스미스의 완벽한 호투는 박경완의 작품이라는 평가다.

SK 전력분석팀 김정준(33)씨는 세명의 김성근 중 가장 김성근 감독을 닮았다. 바로 김감독의 아들이다. LG 트윈스에서 프런트로 근무하던 그는 지난해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자 그만두고 SK로 옮겼다. 그가 1차전 선발인 기아 에이스 김진우를 분석해 내놓은 커브 공략법은 시리즈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올시즌 중하위권의 전력으로 평가됐던 SK가 예상을 깨고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는 이 밖에도 김기태.김민재.김원형.조웅천 등 30대 노장들을 중심으로 한 끈끈한 팀워크를 들 수 있다. 게다가 결정적 순간에 적시타를 때려낸 이진영.이호준.조원우 등과 빼어난 피칭을 과시한 채병용.이승호.제춘모 등 '영건'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인천=성호준 기자

***양팀 감독 한마디

▶SK 조범현 감독=기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부터 매 경기 결승전이라는 생각으로 임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선수들의 승부욕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고, 기아 선수들의 컨디션이 나빴던 것이 행운이었다.

▶기아 김성한 감독=주축 선수들이 좋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다. 몇몇 선수는 몸이 굳어져 있어 경기를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했다. 1,2차전에서 완패한 것이 큰 부담이 됐다. 타선이 살아났지만 믿었던 투수진이 무너지는 바람에 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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