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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미쓰비시사의 록펠러센터 매수 쇼크|엔화로 "진주만 기습"|콧대 꺾인 미 자존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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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뉴욕=박준형 특파원】뉴욕 타임스가 31일 「일본인 뉴욕의 상징을 사다」라는 제목으로 일본 미쓰비시가 록펠러 센터를 구입키로 한 사실을 1면 톱기사로 보도한 것은 뉴욕 시민이 이 「사건」으로 받은 충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번에 함께 팔린 제너럴 일렉트릭의 대형 고층 건물 사진과 함께 보도된 이 거래는 미국 경제 중심지에 살고 있다는 뉴욕 시민들은 물론 미국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깔아뭉개 버린 것으로 「일본 엔화에 의한 진주만 기습」쯤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이번 거래는 그 규모로 보면 지난달 소니사가 컬럼비아 영화사를 34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나 요즘 밥먹듯이 이뤄지는 일본 기업들의 미국 재산 구입 등에 비하면 별 대수로운 것이 아니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뉴욕 시민을 비롯, 미국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 록펠러 센터가 지닌 상징성에 있다.
미국 하면 쇠퇴의 길에 있다고 여겨지지만 아직 세계 최대의 경제국이요, 미국 경제 하면 뉴욕이 그 본산지다. 뉴욕의 핵심은 맨해턴이고 그 가운데서도 록펠러 센터는 가장 현대적이고 명성 있는 비즈니스 지구로 미국인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 같은 비즈니스 지구가 한 건물도 아니고 금싸라기 같은 맨해턴의 땅 8만9천평방m와 19개의 건물이 몽땅 한 덩어리로 일본인 지배에 넘어간 것이다.
이 가운데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기업과 그들의 본부 건물이 들어가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NBC·타임-워너·모건스탠리·맥그로힐 출판사·액손·타임라이프사 빌딩이 대표적인 건물이다.
이 같은 대표적인 기업들이 모두 일본 부동산 회사의 전세 입주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으니 미국인들이 복통을 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록펠러가 록팰러 센터를 완공한 것은 39년11월11일로 꼭 완공 50년만에 일본인 손에 넘어 간 것도 미국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또 하나 이번 거래가 미국인들의 가슴을 때리고 있는 이유는 미국의 경제 이념인 자본주의와 부의 상징으로서 포드 가와 함께 대표적인 가업 경영 기업인 록펠러 가가 일본의 전통적인 가업 경영 기업에 굴복했다는 사실이다.
일부 미국인들은 현금에 눈이 어두운 록펠러 후손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한편 록펠러 그룹을 인수한 일본의 미쓰비시 부동산 다카키 (고목) 사장은 『이 세상에 록펠러 센터 같은 상징을 갖는 비즈니스 주소는 없다. 이는 탁월함과 동의어다』라고 소감을 밝힘으로써 미국인들의 불편한 심기를 더욱 긁고 있다.
미국인들의 심기야 어떻든 돈 많은 일본인들의 미국 재산 인수 열풍은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매수자를 찾고 있는 세계 최고의 빌딩인 시카고의 시어즈 빌딩도 결국 일본인에게 넘어 가리라는 것이 이곳 경제계의 체념 어린 전망이다.
【동경=방인철 특파원】미쓰비시 (삼릉) 부동산의 록펠러 그룹 (RGI)의 매수 발표로 미국여론의 대일 비판론은 더욱 거세 질 것으로 일본인들도 일부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 의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 자본의 투자 규제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며 이달 열리는 미일간의 제2차 구조 조정 협의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기업가는 『구조 협의를 통해 일본 기업이 저팬 머니를 무기로 물밀듯 미국에 진출해오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어 미일간의 투자 마찰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한편 아직도 재력이 탄탄한 록펠러가 이번 거래에 응한 것은 록펠러 그룹의 「재산 분산을 통한 재무 내용의 재구축」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게 일본측 시각이다.
뉴욕시의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라 RGI사의 자산이 최근 3배로 상승, 한 회사에 자산이 너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주식을 매각, 분산했다는 얘기다.
또 미국에서는 임대료의 변동폭이 커 수입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일본 최대의 부동산 관리회사인 미쓰비시지쇼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목적도 있다고 본다.
미 RGI사 RF 페티트 부사장도 『경제의 국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가 좋은 파트너십을 갖게 됐다』며 경영 공동 방식이 유지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진상은 이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록펠러 가의 자산을 관리·운영하는 조직인 록펠러 패밀리 트러스트는 RGI 전체 주식의 약 95%를 소유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지쇼사는 이번 매수 전에서 이 트러스트로부터 소유 주식의 51%를 장악했다.
게다가 일본 미쓰비시 측의 지분을 80%까지 늘릴 수 있게 합의돼 있으며 일본측은 앞으로 임원을 파견, 경영에 참여할 뜻을 밝히고 있어 RGI는 미쓰비시 측의 실질적인 자회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그만큼 이번 거래는 일본 기업의 미 부동산 투자로는 과거 최대 규모였던 소니사의 컬럼비아 영화사 매수에 못지 않은 충격을 미국에 던질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 건설성 조사에 따르면 최근 들어 일본 자본에 의한 토지나 빌딩 등 미 부동산 매입은 급증 추세에 있어 85년부터 87년까지 3년간 모두 1백83건, 88억5천만 달러 (약 5조9천3백억원) 어치에 이른다.
또 88년 한해 투자 총액은 55억 달러로 10여년 전인 78년 8천55억 달러에 비하면 60배 이상 팽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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