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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로드를 가다<27>직 교역 손짓하는 베트남 사기업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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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베트남의 대외무역회사 이름은 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이름 끝 부분에 「∼IMEX」「∼EXIM」이라는 표기가 많이 눈에 띄는데 「IM」 「EX」는 각각 수입· 수출의 약자다.
앞부분에는 그 기업이 주로 취급하는 품목 명이 나오고 그 뒤에 「수출입공사」가 첨가되어 그 기업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COAL (석탄)IMEX」하면 석탄수출입공사, 「SEAPROD(수산물)EX」는 수산물 수출공사 하는 식이다.
따라서 그 기업의 이름만 들어도 대강 무슨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인지 윤곽을 잡을 수 있다.
88년 이전까지만 해도 생산기업의 대외무역은 해당지역 무역전담회사인 「수출입공사 (IMEXCO)」를 거쳐야 했으나 지난해 1월부터 각 생산업체들도 독자적으로 수출입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석탄·식품·수산물·가죽류 등 특정생산품에 특화 되어 있는 기업들이 각각 독립채산제에 의해 대외무역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2백 개 기업에 창구>
도안 녹 봉 하노이상공회의소 사무총장은 『현재 베트남에는 직접교역권한을 가진 기업들이 2백여 개나 있다. 이들은 크게 나누어 중앙정부 산하기업과 지방정부 · 산하기업으로 구분된다. 물론 민간사 기업들도 수출입을 할 수 있으나 그때는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얼마 후면 사기업들도 직접 교역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히고있다.
대외무역권한이 부여된 각 기업들의 외화획득 실적 경쟁도 치열하다.
왜냐하면 베트남의 만성적인 외화부족으로 인해 외화획득 실적이 많은 기업일수록 더 많은 수출입 쿼타가 돌아갈 뿐 아니라 발언권도 더 세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성이나 구·군청산하 기업이라 하더라도 중앙정부산하기업보다 규모가 더 크고 생산활동 및 대외거래가 활발한 기업들이 꽤 있다.
호치민시의 판구청 산하 기업인 LEGAMEX (가죽 및 섬유제품 수출입공사) 라는 회사도 그와 같은 기업 중 하나다.
LEGAMEX는 또 재미한국교포인 H씨와 합작으로 새로운 섬유봉제공장을 짓고 있기도 하다.
호치민시 중심부에서 서북쪽으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토히엔 탄 산구의 이 회사 정문을 들어서면 섬유봉제공장 신축작업이 한창이다.
LEGAMEX는 이 신축공장 말고도 봉제 공장·신발공장 등 2개의 생산공장이 있다.
H씨가 이 회사에 투자하게된 배경도 흥미롭다.
H씨는 베트남에 투자하고 있는 다른 교포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 당시 이곳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있다.
구 사이공주재 미국대사관과 라오스주재 미대사관을 거쳐 주한미대사관에서도 지난 73∼81년 8년간 근무했다.
H씨는 정년퇴임 후 미국에 들어가 라스베이가스에서 콩코드라는 무역회사와 베리센터마킷이라는 슈퍼마킷을 경영했다.
H씨가 다시 베트남에 발을 디딘 것이 지난 87년.
하버드대 출신인 구엔 수안오웨인씨 (베트남 경제협의회회장 겸 정부고문으로·지난해 우리 나라를 방문하기도 했으며 개혁·개방정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의 대학선배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H씨가 베트남에서 벌인 첫 사업은 대나무젓가락 제조 공장.
호치민시 북부에 있는 송베성의 SOVEXLM (송베성 수출입공사) 이라는 기업이 원자재· 공장부지· 인력 등을 대고 H씨와 한국의 죽제품 제조업자인 J씨가 자본·설비 등을 맡아서 설립한 리딩 월드 사가 그것이다.
H씨가 대나무젓가락에 착안한 것은 송베성이 서울시 면적의 2배에 달하는 대나무 밀집지역을 갖고 있어 원자재 공급은 거의 무한대에 달하기 때문.
게다가 아시아지역이 젓가락을 쓰는 공통적 문화권에 속해 있어 수출시장도 넓은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리딩 월드 사는 베트남 전 당시 우리 나라의 비둘기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에 공장을 짓고 지난 7월3일 가동에 들어가 올해만 7백20만 달러, 내년에는 1천5백만 달러 어치를 생산, 동남아지역 등에 수출할 계획이다.
H씨가 이 대나무 젓가락공장 말고도 LEGAMEX의 섬유산업에 투자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미대사관에서 다년간 근무했던 경험 때문에 미·베트남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정통한 H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캄보디아주둔 베트남군의 철군으로 미·베트남은 오는 89년 말까지, 늦어도 90년 초까지는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렇게되면 베트남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 면세 혜택 등이 부여될 가능성이 많다.

<섬유합작생산 유리>
따라서 한국 섬유업체들이 베트남과 합작으로 섬유류를 생산하면 대미수출이 훨씬 유리해질 것이다.
H씨는 또 『소·동구지역진출도 베트남을 우회할 수 있으면 이점이 많다. 즉 소·동구지역으로부터 대금을 물품으로 받아 이를 베트남에서 보세 가공시킨다면 국내에는 훨씬 싼 가격으로 들여올 수 있다』며 우회기지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라오스에의 우회수출, 게다가 베트남의 내수시장 자체도 이곳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들에는 큰 관심이라는 컷이 H씨의 견해다.
LEGAMEX사는 봉제공장에서 테이블시트·기모노·셔츠 등을, 신발공장에서는 슈트케이스· 신발· 벨트등 가죽제품을 생산, 소련·체코·홍콩·서독·이탈리아·일본 등과 교역 중이라 한다.
1천여 평 규모의 봉제공장은 10개정도의 생산라인을 갖고 있으며 9백 명의 노동자 대부분이 2O대의 여성들이었다.
이 공장2층 사무실에 올라가니 입구 맞은편에 액자사진 3개가 걸려 있는데 가운데가 베트남인들이「백부」라고 부르며 친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호치민이고 왼쪽이 마르크스, 오른쪽이 레닌의 사진이었다.

<생산량과 임금연계>
트루옹 부장은 또 『임금은 생산량에 따라 결정되며 초임의경우도 마찬가지다. 연간 생산액은 약 1백70억 동 (약4백25만 달러) 이다. 직접교역권한은 올해 초에 받았다』고 밝혔다.
1층의 생산직노동자들은 대부분 고졸사원이고 2층의 사무직노동자 20명은 대졸이라고 밝힌 트루옹 부장은 『그러나 생산직 노동자들 중에서 공부를 계속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지역의 「집중 학교」에 강좌를 개설해 공부시켜주고 있다』 고 부연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에 대해 『미 달러로 얼마 정도면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조금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달러로 쳐서 약50달러 정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이곳·봉제·신발공장 노동자들의 월 평균 임금이 25달러 수준이므로 거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이곳 노동자들의 좀더 정확한·임금수준 및 생활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신발공장의 보 두이 통 (31) 이라는 노동자를 만났다.
이방인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몰려든 여성노동자들 속에서 생산라인 끝 부분에 앉아 조용히 웃고 있는 통을 인터뷰 상대로 청한 것은 전혀 우연이었다.
-무슨 일을 맡고 있는가. 『신발에 마크 찍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 8시간 씩 일하는데 근무시간은 오전6시부터 오후2시까지다. 다음 주에는 오후2시부터 오후10시까지 일한다. 격주로 근무시간이 바꿔는 것이다』
-하루에 8시간씩 일하고 나서 한 달에 받는 월급은 얼마인가.
『한 달에 12만8천 동 (4천 동을 1달러로 계산하면 약 32달러)을 받는다. 이 중에서 2만∼4만 동을 저금하고 나머지는 쌀·음식 등 가계지출과 코피·담배·T셔츠 등 개인용돈으로 쓰고있다』
-그 정도 월급 갖고 생활하기에 충분한가.
『아버지 (보반하· 61)가 개인회사에 나가고있어 10만 동 (25 달러) 을 벌고 있다. 누나2명을 포함해 모두 5식구가 살기에는 그것 갖고 충분치는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간다\냄
-다른 부수입은 없는가.
『정초 휴가 때 3일간을 새 신발 신는 풍속에 맞추어 신발을 만들어 팔고 있다. 내년에도 그렇게 하면 30만∼40만 동(75∼1백 달러) 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숙련공 월급이 32불>
-이곳에서 일한 지는 오래 됐는가.
『75년 사이공이 해방되던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리공장에서 6년 동안 일했는데 집에서 가까운 곳을 택해 이곳으로 옮긴 뒤 현재까지 7년 동안 일했다』
통은 바로 얼마 전에 1백80만 동 (4백50달러) 하는 일제 JVC 컬러TV를 샀고 또 그 이틀 뒤에는 95만 동 (2백37달러)하는 일제 카메라를 샀다고 자랑스런 표정을 지었는데 컬러TV 하나만 하더라도 그의 봉급 14개월 치에 달하는 것이어서 『어떻게 구입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냥 『친구를 통해서 샀다』 고만 웃으며 말했다.
H씨를 비롯해 베트남에 합작투자를 희망하는 한국기업들이 무엇보다 염두에 두고있는 것이 양질의 노동력이다.
통의 경우만 하더라도 7년 정도 일한 숙련노동자라 볼 수 있는데 한달 봉급이 32달러정도라면 우리 나라에서 그만한 숙련노동자의 월급이 20만원 (3백33달러)으로 잡아도 10분의1정도 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곳을 같이 방문한 C무역의 S사장은 『베트남은 틀림없이 매력적인 인력수급시장이다. 단 사회주의체제의 여러 가지 장벽을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최대 과제다. 예를 들어 인건비 및 공임에 대해서 이곳 당 또는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주고 업체를 통제하기 때문에 한국업체로서는 어떻게 이를 협상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라고 밝혔다. <글·사진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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