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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도 힘 실은 文 '4% 성장' 공언…"착시 걷고, 내실 다져야"

중앙일보

입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3.8%로 내다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4% 성장’ 목표 달성이 한층 힘을 받는 모양새다. 반도체 등 일부 수출 호황에 따른 착시(錯視)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너진 내수를 회복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으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관론’ 퍼지는 한국 경제성장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낙관론’ 퍼지는 한국 경제성장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OECD는 31일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8%로 발표했다. 두 달 전보다 0.5%포인트 올려잡았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5.8%로 전망했다. OECD는 매년 3ㆍ5ㆍ9ㆍ11월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한다. 이번 통계는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올 1분기 전 분기 대비 실질 GDP 성장률 속보치(1.6%)를 발표한 뒤 처음 나온 국제기구 통계다.

OECD는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백신 접종 지연이 소비ㆍ고용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백신 접종을 가속해야 한다”며 “경제가 견고한 성장 경로로 복귀할 때까지 피해계층에 대한 지원 등 확장적 재정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김영훈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두 달 전보다 글로벌 성장률은 0.2%포인트, 주요 20개국(G20) 국가는 0.1%포인트 올린 데 비해 한국 성장 전망은 대폭 상향했다”며 “한국 경제의 최근 빠르고 강한 회복세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국제기구가 속속 한국 경제에 청신호를 켰다. 3%대 성장을 기정사실화한 분위기다. OECD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2.8%)를 지난 3월 3.3%로 올린 뒤 이날 재차 상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월 3.1%에서 3월 3.6%,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해 12월 3.3%에서 올해 4월 3.5%로 각각 올려잡았다.

국내 기관은 4%대로 좀 더 낙관했다. 한은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전 3%에서 4%로 올려잡았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11월 2.9%에서 이달 들어 4.1%,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10월 3.3%에서 이달 들어 4.3%로 각각 상향했다. 그나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3.8%를 예측해 4% 아래로 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수치상으론 전 세계적인 경기 회복세와 수출 호조가 맞물려 각종 경제 지표가 우상향하는 추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우리 경제가 4% 이상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정부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공언한 목표에 다다르는데 순풍을 타는 모양새다.

다만 4% 성장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는 아니다. ADB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아시아 개발 전망’에 따르면 올해 중국ㆍ홍콩ㆍ대만 등 동아시아 5개국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7.4%다. 5개국 중 한국이 가장 낮다. OECD 경제전망 기준으로도 G20 중 14위다. 기저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미국(6.9%)ㆍ영국(7.2%)ㆍ호주(5.1%)ㆍ유로존(4.3%)은 물론 중국(8.5%)ㆍ인도(9.9%) 같은 신흥국에 크게 못 미친다.

더 큰 과제는 성장률에 가린 ‘실속’을 차렸느냐다. 각종 지표 개선세가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은 덕분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38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올랐다. 하지만 나라에서 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지원금과 공익직불금, 기초연금 등 같은 '공적 이전소득'이 27.9% 증가한 영향이 크다. 같은 기간 근로소득(-1.3%)ㆍ사업소득(-1.6%)은 줄었다. 1년 전보다 65만2000명 늘어난 4월 취업자도 30ㆍ40대에선 줄었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5.1%를 기록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지난 28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은이 새로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가 너무 낙관적”이라며 “한국의 높은 반도체 의존도가 불안정한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을 감추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비(非)반도체 부문은 여전히 노동시장 약세로 인해 실적이 저조하고 소비 회복이 더디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등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는 위험에 대비하려면 펀더멘털 다잡기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질좋은 일자리가 받쳐주지 않으면 경기 회복의 실질적인 열쇠인 민간 소비ㆍ내수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인플레이션 불길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가까스로 살아난 경기 회복의 불씨가 꺼질 수 있다”며 “백신 접종 속도를 높여 내수를 회복시키고, 재정 일자리 대신 성장 가능성 있는 산업에 투자하고 규제를 풀어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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