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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정권에 베이징 들어오나···美, 미사일지침 풀어줄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7년 8월 24일 시험 발사된 사거리 800㎞, 탄두 중량 500㎏인 현무-2C 탄도미사일. [사진 국방부]

2017년 8월 24일 시험 발사된 사거리 800㎞, 탄두 중량 500㎏인 현무-2C 탄도미사일. [사진 국방부]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20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미사일지침 해제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미 미사일지침 해제) 가능성에 대해 내일(21일) 정상회담에서 긍정적인 결론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한·미 미사일지침은 1979년 박정희 정부 때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이전받기 위한 조건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제재는 사거리 180㎞에 탄두중량 500㎏이었다. 미사일지침은 총 네 차례 개정됐다. 김대중 정부(2001년)와 이명박 정부(2012년), 문재인 정부(2017년, 2020년)에서 이뤄졌다.

현재 미사일지침은 최대 사거리 800㎞에 탄두중량 제한은 없고, 우주발사체에 고체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완화됐다. 미사일지침이 해제되면 사거리 제한이 풀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 외교안보팀은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미사일지침 해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구상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거리 제한 없어지면 베이징도 사정권에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광장에서 815서울추진위 회원들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은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반중국 동맹 참여 반대, 굴욕적 한인 관계 복원 반대, 대북적대정책 폐기 등을 촉구했다. 뉴스1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광장에서 815서울추진위 회원들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은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반중국 동맹 참여 반대, 굴욕적 한인 관계 복원 반대, 대북적대정책 폐기 등을 촉구했다. 뉴스1

미사일지침 해제는 우선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발목 잡았던 ‘안보 족쇄’를 끊는다는 의미가 있다. 국방력은 외교 협상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미사일지침이 해제된다면 국가의 외교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우주발사체 개발과 관련해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군사용 미사일의 기술 발전이 우주발사체 개발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족쇄’가 없어진다는 것 자체가 창의적인 연구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일지침 해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른 중국 견제 포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미국의 대(對) 중국 포위 전략의 포석 중 하나로 미사일지침 해제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지침으로도 북한 전역이 미사일 사거리 내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미국이 굳이 사거리 제한을 풀어주는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北京)은 서울과 직선 거리가 약 950㎞로 현재 미사일지침의 사거리 제한 밖에 있다. 하지만 미사일지침이 해제되면 베이징이 사거리 안에 들어온다. 신 대표는 “한국이 당장 중국을 타격할 가능성은 낮지만,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안에 수도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로 중국에게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미사일지침 해제가 한국에겐 대중 관계 악화의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미사일지침 해제는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업그레이드 등 중국 견제의 거대한 게임의 일환”이라며 “중국을 공격하는 무기 체계가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공간을 열어둔 것이어서 그 파장이 폭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선 탈원전, 외국선 한·미 원전 협력?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탈원전 선언을 하자 부산 녹색당 당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탈원전 선언을 하자 부산 녹색당 당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원전 산업 협력 방안도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한·미 정상이 원전 협력을 논의하고 회담 후 그 결과를 밝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원전 산업의 경우 한국과 미국의 협력이 시너지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면서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만큼 가격경쟁력, 품질관리, 시설관리 면에서 우수성을 지닌 나라도 없다”며 “원천기술·설계기술의 경우 한국도 수준이 상당하지만, 미국도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한·미 양국이 기술 협력을 통해 제3국에 공동으로 진출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중동이나 유럽 등에서는 원전 건설 수요가 있다. 한·미가 손을 잡고 진출하면 상당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협력 방안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2018년 체코를 방문해 현지 원전시장 참여를 타진했을 때에도 “국내에서는 원전 폐쇄하더니, 외국 가서는 원전 사라는 거냐”는 비판이 나왔다.

공동성명에 판문점선언 담길듯 

2018 남북정상회담이열린 2018년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중앙포토

2018 남북정상회담이열린 2018년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중앙포토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또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공동성명에 ‘판문점선언을 존중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담길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에 한국이 많이 기여하지 않았느냐”며 “남북관계에 대한 (미국의) 존중과 인정의 뜻에서 판문점선언이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판문점선언에는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적대행위 전면중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18년 6월 북·미 정상 간 싱가포르 합의의 토대 위에서 유연하고 실용적인 접근으로 대북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기조를 정한 상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미 간 합의뿐 아니라 남북 간 합의도 모두 존중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진행됐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흐름을 바이든 행정부도 이어가겠다는 의미”라며 “판문점선언에는 북한이 원한 한반도 평화체제와 한국이 원한 완전한 비핵화가 짝으로 담겨 있는데, 이런 교환의 틀을 바탕으로 북한 문제 해결의 동력을 찾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은 회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도 논의한다. 구체적인 공여 물량 등을 언급하는 대신 백신 생산 글로벌 허브 구축 등 큰 틀에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공동취재단, 서울=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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