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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빗장 푸는 미국…'조기 도입' 성과 나올까

중앙일보

입력

자국민 접종을 앞세우며 국제사회의 '백신 독점' 비판을 받아온 미국이 백신 빗장을 풀기로 하면서 한국도 수혜국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백신 협력을 핵심 의제로 논의할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이라 백신을 조기에 당겨 받는 등의 구체적 성과가 나올 거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6월 말까지 미 보건당국이 승인한 코로나19 백신 2000만 회분을 해외에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지난 17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6월 말까지 미 보건당국이 승인한 코로나19 백신 2000만 회분을 해외에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18일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정부는 6월 말까지 화이자, 모더나, 얀센 등의 코로나19 백신 2000만회분을 타국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 백신은 앞서 미국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6000만회분을 다른 나라에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과 별도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8000만회분 물량이 “다른 국가들이 세계에 공유했던 백신보다 5배나 많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넘어 백신 물자를 공유하는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결정은 미국 내 백신 공급이 수요를 넘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 백신 외교를 의식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월스리트저널(WSJ)은 “미국에선 1억2300만명 가까운 미국인들이 접종을 완료했고, 성인의 60% 가량이 최소 한 차례 접종했다”며 “그간 미국 우선 접종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국내 접종이 늘고 백신 수요가 감소하면서 이 정책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이자 백신 전용주사기가 용기에 가득 담겨 있다. 중앙포토

화이자 백신 전용주사기가 용기에 가득 담겨 있다. 중앙포토

그간 미국은 백신 사정에 여유가 있는데도 백신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에 인색한 탓에 수출을 통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WSJ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은 3억3300만회 이상의 백신을 생산했지만, 수출 물량은 300만회에 불과했다. 전체 생산량의 42%(약 2억5200만회)를 수출한 중국과 1/3 이상(1억1100만회)을 수출한 유럽연합(EU)과 큰 차이라고 WSJ은 전했다.

대전 유성구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어르신들에게 화이자 백신을 신중히 접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 유성구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어르신들에게 화이자 백신을 신중히 접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밝힌 추가 2000만회분의 백신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나라와 공유될지 모른다. 다만 한국이 그간 미국의 여분 백신을 미리 받은 뒤 나중에 갚는 ‘백신 스와프’를 추진 중이라고 알려진 상황에서 나온 발표여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성과가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백신 조기 도입과 백신 스와프, 국내 대규모 위탁 생산 등의 방안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진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12일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6월에 백신을 조금 당겨 받으면 방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시기 조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우리가 확보한 백신은 인구의 2배 정도가 맞을 수 있는 1억9200만회분으로 늘었지만 내달까지는 1832만회가 들어올 예정이고 상당수 물량은 3, 4분기에 도입된다. 확보 물량은 충분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사실상 하반기에 도입이 쏠려 있어 물량을 조금이라도 더 당겨 들여올 수 있다면 수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방역당국은 17일 “미국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에 백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면서도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 물량이 국내로 들어올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표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선진국의 백신 기부에 대해 얘기한 뒤에 나온 것”이라며 “2000만회 물량은 도의적으로 환자 발생이 많고 백신이 부족한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국가 위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일부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적은 물량일 것”이라며 “이와 별도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미국 방문 당시 화이자 백신 추가 확보했던 것처럼 유사한 딜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6월 말까지 1300만명에 1차 접종을 완료한다는 전제 하에 환자 규모가 이 정도 수준으로 7월 중순까지만 버텨주면 이후 환자가 상당히 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며 "어려운 나라에 과감히 양보해 주는 포용성을 보이고 대신 선구매한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 제때 들어오게끔 미 정부가 애 써주는 식으로 협의하면 서로 윈윈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AFP=연합뉴스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AF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정부가 확보 물량만 강조하지 말고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해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과할 정도로 대비해야 한다”며 “3월에 맞은 고령층 등의 면역이 얼마나 오래갈지 몰라 추가 접종이 필요할 수도 있고 변이 변수에도 대응해야 한다. 16세 이하 소아·청소년 접종도 남아있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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