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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롯데는 감독 혼자서 망친 팀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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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허문회 전 롯데 감독은 선수단 운영에 단장의 간섭이 지나쳤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허문회 전 롯데 감독은 선수단 운영에 단장의 간섭이 지나쳤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감독을 또 바꿨다. 허문회 감독을 11일 경질하고 래리 서튼 퓨처스(2군) 감독을 제20대 사령탑에 선임했다. KBO리그 역사에서 롯데는 감독을 가장 많이 교체한 팀이다. 1982년 나란히 출범한 KIA 타이거즈(9명·전신 해태 포함)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KBO리그 최다 19차례 감독 교체 #극찬하며 영입한 감독 바꾼 단장 #갈등보다 더 나빴던 건 갈등 노출 #팬심 시험대 오른 프런트 운명은

허 감독 경질은 사실 놀라운 소식도 아니다. 시간문제로 보였다. 성민규 롯데 단장과 허 감독 불화가 지난해 초부터 계속됐다. 둘의 동행이 1년 넘게 이어진 게 놀랍다면 더 놀라운 일이다.

허 감독은 2019년 말 취임한 성 단장이 주도적으로 영입한 사령탑이다. 성 단장은 감독 계약 후 “이번 스토브리그 최고 영입은 단연 허 감독님”이라고 말했다. 계약 기간 3년도 파격적이었다. 감독 경험이 없거나 팀 레전드 출신이 아닌 초보 사령탑은 대개 2년 계약으로 출발한다. 롯데는 허 감독에게 3년을 보장하면서 장기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취했다.

젊은 단장과 새 감독의 의기투합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 단장의 취임 1호 트레이드가 발단이었다. 성 단장은 2차 드래프트 2·3라운드 지명을 포기한 뒤 호기롭게 “기다려달라. 내가 어떤 포수를 영입하는지 보여드리겠다”고 장담했다. 얼마 뒤 선발투수 장시환을 한화 이글스로 보내고 지시완을 데려왔다. 그렇게 영입한 포수였으니, 성 단장은 지시완의 진가를 실전에서 확인하고 싶었을 거다.

성민규 롯데 단장은 갈등설에 대해 “통상적인 의견 교환 수준”이라 해명했다. [연합뉴스]

성민규 롯데 단장은 갈등설에 대해 “통상적인 의견 교환 수준”이라 해명했다. [연합뉴스]

허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거치면서 지시완이 1군 포수 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용하지 않기로 했다. 성 단장과 허 감독의 길은 이 지점부터 어긋났다. 이후 베테랑 투수 장원삼의 선발 등판을 놓고 또 한 번 대립했다. 성 단장은 장원삼을 ‘추천했다’고 생각했고, 허 감독은 선수단 운영에 ‘간섭했다’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둘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단장과 감독의 사이가 롯데만 나빴던 건 아니다. 거의 모든 팀 단장과 감독은 늘 크고 작은 사안을 두고 대립한다. 이해관계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 성적이 좋은 팀도 불화는 있다. 단장은 ‘이 정도 전력을 꾸려줬으면 우승은 감독의 몫’이라고, 감독은 ‘이 정도 전력으로 우승은 어림없다’고 각각 생각한다.

성적이 안 좋은 팀은 당연히 불화가 더 심하다. 서로에 책임을 돌리고 서로 원망한다. 감독의 경기 운영이 답답한 단장은 자꾸 잔소리하고 싶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많은 감독은 현장 일에 왈가왈부하는 단장이 원망스럽다.

롯데의 진짜 문제는 이런 둘 사이 갈등 상황이 외부로 적나라하게 알려졌다는 거다. 야구는 단체 종목이다. '내분' 구도는 구단 이미지에 치명적이다. 대부분 팀에서 단장과 감독이 종종 티격태격해도 결국 조용히 갈등을 봉합하거나 절충안을 찾는 이유다. 롯데처럼 불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갈등은 자존심 싸움으로 확대된다. 성 단장과 허 감독이 세상에 대고 각자 서로에 대한 불만을 내비친 동안, 롯데 팬과 선수단도 갈라졌고 뒷걸음질 쳤다.

심지어 성 단장은 팬이 수시로 드나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수차례 의미심장한 글과 사진을 남겨 사태를 키웠다. 일례로 허 감독은 지난해 말 한 인터뷰에서 “단장님과 불화는 없다”며 겉으로라도 봉합을 시도했는데, 성 단장은 소셜미디어에 노래 ‘거짓말’을 듣는 사진을 올렸다. 의도였는지, 우연이었는지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 사진은 불화설에 관한 관심에 불을 붙였다.

오랜 대립 끝에 결국 허 감독이 먼저 링을 떠났다. 롯데는 일단 성 단장 손을 들어준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이 ‘내전’의 승자가 된 걸까. 결과는 아직 모른다. '집안싸움'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게 애초에 무의미하다.

프로야구에서 팬의 목소리는 권력의 중요한 원천이다. ‘여론’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팬심’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바뀐다. 천하의 이대호(롯데)도 경기를 마치고 나오다 ‘팬’이 던진 치킨 박스에 맞았다. 향후 성 단장이 데려온 선수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지금 단장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는 ‘팬심’이 가장 먼저 돌아설 거다.

창단 40주년을 맞은 롯데 구단은 신생팀(SSG 랜더스) 구단주로부터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는 도발을 당해도 반박할 수 없는 팀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팀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 감독과 덜컥 3년 계약을 하고, 다시 그 감독을 조기 퇴출하는 것 이외의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지금 롯데는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고 있는 걸까. 성 단장을 위시한 롯데 프런트는 이제 ‘총알받이’도 없는 진짜 최전방에 섰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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