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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시대, 오염된 식단은 가라 `氣의 맛`

중앙일보

입력

상승과 속도 위주의 삶을 닮은 빠른 음식, 소위 패스트푸드(fast food)가 지천이다. 먹는 즐거움에 치우쳐 몸이 병드는 것을 후회해 본들 아무 소용없다. 건강을 챙기고 정신까지 맑게 해 주는 사찰음식, 선식(禪食)이 주목 받는 이유다. 사찰음식이야말로 최상급의 '슬로 푸드(slow food)'인 것.

사찰음식은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드시는 음식으로, 오신채를 쓰지 않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마늘.파.부추.달래.흥거(무릇) 등 현대식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린 양념류인 오신채는 정적이어야 하는 선행에 반해 밖으로 치닫게 하는 성질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생선과 육류를 비롯해 술.조미료.인스턴트 음식 등도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찰음식은 선식(禪食)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모든 음식은 약'이라는 시각은 주목할 만하다. 선재사찰음식연구원의 선재스님은 "아침에는 뇌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영양분 섭취가 빠르게 일어날 수 있도록 가벼운 죽을 먹는 게 좋다"고 권한다. 공부에 정진하는 학생들이 아침밥을 꼭 챙겨 먹어야 하는 이유를 예서 찾을 수 있다.

위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낮에는 딱딱한 음식을, 장이 활동하는 저녁시간에는 과일즙을 먹는 게 생체리듬에 가장 적합한 식사습관이라는 것. 스님은 또 "과식하거나 잠자기 2시간 전에 먹는 음식은 독약과 같다"면서 "과로사.희귀암 등 현대병은 이런 원리를 잊은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됐으니 식습관만 바꿔도 병의 진행을 멈추고 나을 수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제철음식을 먹는 것은 불교의 기본 식생활 가운데 하나다. '금광명최승왕경'에는 봄에는 가래 심화병이 나니 떫고 뜨겁고 매운 것을, 여름에는 풍병이 도지니 미끈미끈하고 뜨겁고 짜고 신 것을, 가을에는 황열병이 생기니 차고 달고 미끈미끈한 것을, 겨울이면 세 가지 병이 한꺼번에 나니 시고 떫고 미끈거리고 단 것을 먹으라는 대목이 있다.

"머위.씀바귀.냉이처럼 겨우내 땅 기운을 한껏 받은 나물이 좋습니다. 여름 전에 머위나물 세 번만 먹으면 풍병도 예방하고 여름을 거뜬히 날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선재스님의 말이다.

여름엔 미끈미끈한 밀가루나 보리, 오이 등의 열매와 호박잎처럼 잎 넓은 식물을, 가을엔 단맛 강한 과일을 많이 먹는 게 좋다. 세 계절의 병이 함께 도는 겨울을 거뜬히 나려면 사계절의 음식을 고루 먹을 것을 권한다. 김치나 묵나물.장아치 등이 대표적이며, 저장식품을 적극 활용한 조상의 지혜와 통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찰음식의 근간엔 불가의 자비와 생명존중 사항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가급적 생명을 다치지 않는 재료를 엄선해 쓴다.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는다. 스님들의 발우공양은 그 대표적인 예. 일례로 즙을 낸 매실은 살을 오려내 장아치로 담가 쓰는가 하면 국물에 우려쓴 다시마는 채 썰어 다시 쓴다. 나물이 멍이 들거나 상하지 않도록 수돗물 대신 그릇에 물을 받아 씻음으로써 생명 본연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사찰음식엔 음식을 만드는 이의 정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온가족이 먹을 고추장.된장을 직접 담그고 오랜 기간을 기다려 쓰는가 하면, 나물 하나 무치고 반찬 하나 만드는 손길이 느리면서도 정갈하다. 이 같은 정성은 음식을 먹는 이에게 옮겨져 그들의 성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확실히 음식이 성품을 만듭니다. 짜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경상도 사람들이 매우 급한 성격이고, 싱겁게 간한 음식을 좋아하는 충청도 사람들이 느긋한 것처럼, 개인도 좋아하는 음식에 따라서 성품이 나옵니다. 때론 그것이 쌓여 조급증.우울증 등의 병을 만들기도 하지요."

선재스님은 10년 전 전 문제 청소년들을 다독이는데 사찰음식을 활용한 음식치료로 성공적인 임상경험을 갖고 사찰음식으로 전공을 바꿨다. 스님 또한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사찰음식으로 병을 치료하고 지금껏 바쁜 사찰음식 강의 일정을 거뜬히 지켜내고 있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카시아 꽃튀김, 머위꽃대 튀김, 버들강아지 열매 튀김, 봄동꽃대 김치, 꽃마리 나물, 꽃다지 나물, 민들레 나물… 이름도 생소한 사찰음식 종류만도 수 백 가지를 웃돈다고 한다. 맛있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밍밍하고 맛 없다는 이도 있을 만큼 사찰음식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선재사찰음식연구원의 차재만 조교는 "재료 본연의 성질을 그대로 살려 몸을 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사찰음식"이라면서 "건강하게 살려면 먹어야 하고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사찰음식"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바쁜 현대생활 속에 우리의 건강이 그만큼 위기에 처해 있음을 반증하는 말이어서 마음이 씁씁하다.

<<선재스님의 아토피에 좋은 음식강좌>>

"음식은 약입니다. 재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성질을 잘 활용하면 병 치료가 가능합니다. 아토피는 몸의 독소가 차 있어 병이 된 경우죠. 몸의 독소를 빼 줄 수 있는 연근과 아욱.검은콩 등을 이용한 사찰음식을 해서 아이들에게 먹여 보세요. 병세가 한결 호전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일산 동국대학교 불교병원에서 '아토피와 음식'을 주제로 한 사찰음식 요리강좌에서 선재스님을 다시금 만났다. 이날 스님은 대강당에 모인 참석자들 앞에서 검은콩죽과 아욱된장국, 연근물김치를 손수 만들어 선보였다.

스님은 음식을 만들며 재료들이 갖고 본래의 성질에 대한 강의도 잊지 않았다. 연근은 몸을 정화시켜 주는 불가의 대표적인 식물. 보통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지만 물에 담그지 않고 바로 채 썰어 쓰는 게 좋다. 연근물김치에 들어가는 대추는 스트레스나 화 등 마음에서 비롯된 독소를 없애주고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①검은콩죽: 콩을 풋내가 가실 만큼만 삶아 찬물에 식힌 후 껍질째 갈고 찹쌀과 섞어 은근한 불에서 죽을 쓰는 것이 포인트.

②아욱된장국: 다시마 우린 물에 은근한 불 상태에서 아욱을 넣고, 된장과 고추장.참기름을 섞어 국물에 채로 받쳐 풀어넣으면 된다. 표고버섯가루로 간을 하고 누렇게 될 때까지 푹 달인다.

③연근물김치: 연근은 둥글게 썰고 미나리와 대추는 채를 썬다. 국물은 배즙을 쓰고 고추가루를 약간 따 색을 낸 후 소금으로 간을 하면 된다. 식전 반찬으로 쓸 경우 물을 섞어 내도록 하고 애피타이저로 내면 배의 단맛이 입맛을 돋우는 데 효과적이다.

이날 강좌에서 선재스님은 가족 건강을 위한다면 조미료를 치우고, 인공첨가제 등이 가미된 식품을 먹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일산 동국대학교 불교병원은 매달 한 차례씩 선재스님의 사찰음식 요리강좌를 진행한다. 비만, 위와 장을 좋게 하는 음식, 요통에 좋은 음식 등을 주제로 한 선재스님 요리강좌는 올해 12월까지 계속된다.

Tip! 가족건강 위해 이것만은 바꾸자!

1. 합성 조미료를 버리고 천연재료로 이를 대신한다.
- 미원.다시다 ->다시마.표고버섯 갈아서 쓴다
- 맛소금 ->천일염을 사서 간수를 빼서 쓴다.
- 양조간장->진간장으로.
- 설탕.물엿->과일즙과 꿀 등으로.

2. 아이들에게 과자.음료수.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을 주지 마라.
과일, 고구마, 떡 등 전통음식을 간식으로 적극 활용한다.

3. 육류를 줄이고 먹을 때는 야채와의 비율을 1:2이상으로 먹는 게 좋다.
튀기고 굽기보다는 삶는 조리법을 활용한다.

4. 외식을 줄인다.

5. 제철음식 위주로 식단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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