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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암 검진'정책 겉돈다

중앙일보

입력

40대 주부 이모(경기도 남양주시)씨는 얼마 전 건강보험공단에서 올해 암 무료 검진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이씨는 "먹고살기 바쁜데 아픈 데도 없이 병원에 뭐하러 가느냐"며 "더군다나 대충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었던 얘기도 떠올랐다. "남양주시의 경우 자궁경부암 검사를 커튼 정도만 가린 일반 진료실에서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아무리 무료 검진이라 해도 그런 곳에서 검사받긴 싫다"고 말했다.

정부가 무료로 암 검진을 해주는 '국가 암 조기 검진 사업'이 시행 5년째로 접어들었다. 위암.유방암.자궁경부암.간암.대장암 등 검진 대상 암의 종류나 무료 검진 대상자는 매년 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인식 부족과 검진기관 부족, 무료 검진에 대한 불신 등으로 수검률은 아직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검진율 여전히 10%대=회사원 최효림(48.서울 방화동)씨는 3년 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암 검진에서 위암을 조기에 발견,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최씨는 '이젠 암 검진도 받아볼 나이'라는 아내의 권유에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위암이었다. 다행히 증세도 없고 전이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곧 수술한 최씨는 올해부터 정기 검진도 6개월에 한 번씩 가면 될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체 암환자의 3분의 1은 최씨처럼 조기에 발견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02년부터 무료 암 검진 대상자를 기존의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물론 건강보험 가입자들로 확대해 왔다. 올해는 건강보험료 하위 50% 이하까지가 대상자다. 이를 위해 올해 투입될 국비와 지방비만 437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수검률은 여전히 10%대다. 2002년 12.9%, 2003년 13.6%, 2004년 13.9%에서 지난해 18.8%(2월 10일 현재)로 다소 높아졌을 뿐이다. 지난해의 경우 대상자인 1389만여 명(암 종별 해당자를 한 명씩으로 계산한 연인원) 가운데 261만여 명이 암 검진을 받았다.

◆ "형식적 검진 무슨 소용 있나"=암 검진 수검률이 낮은 이유는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가 가장 크다(지난해 국립암센터 설문조사 결과). 2001년 가톨릭대 의과대가 국가 암 검진사업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형식적인 것 같아서' 검진을 받지 않는 경우가 전체 응답의 3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건보공단이 영상촬영기와 초음파기 총 342대를 거둬 유효성을 조사한 결과 20%가량인 69대(62개 기관)가 검진 결과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부족한 검진기관=수검자들이 검진받고 싶어하는 유명 의료기관은 대부분 건강보험 검진기관으로 등록돼 있지 않다. 유명 의료기관들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고가의 암 검진 프로그램들만 운영하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조차 지난해에야 무료 검진 대상자를 받기 시작했다. 그나마 부산 강서구, 인천 옹진군, 강원도 인제.고성.양양군, 충북 괴산군, 제주도 북제주군 등 7곳은 무료 암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전혀 없다. 5대 암 종류별로 건강보험 검진이 가능한 곳은 전국에 1177(유방암)~1727(간암)곳 정도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암센터소장은 "형식적인 검사로 지적받고 있는 대변검사도 비용.효율 면에서 보면 아주 유용한 대장암 검사"라며 "국가 암 검진사업에 많은 국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가까운 곳에 믿을 만한 검진기관을 많이 마련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국가 암 조기 검진 사업이란=발생률과 사망률이 높은 위.간.대장.유방.자궁경부암(폐암은 확실한 조기 발견 방법이 없어 제외) 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 일반 건강보험을 통해 검진을 받을 경우엔 검진비의 20%(지난해까진 50%, 자궁경부암은 무료)를 본인이 내야 한다.

대책은 뭔가
의원급 산부인과도 참여 … 판독 전문가 키워야

정부는 내년부터 의원급 산부인과도 암 검진 기관으로 등록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건강보험에 등록된 검진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일반 건강검진 시설까지 갖춘 곳만 암 검진기관으로도 등록할 수 있다. 의원급 산부인과들이 대부분 검진기관에서 빠지는 이유다.

국립암센터 이승훈 병원장은 "검진의 질은 검진기관의 외형적인 규모와 큰 상관이 없다"며 "검진 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함께 검진 결과를 판독하는 병리사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는 이를 위해 표준 검진 지침 개발과 함께 국가 암 검진센터를 신축 중이다. 검진센터는 올해 총 8곳으로 늘어나는 지역 암센터와 공조해 검진자를 늘리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검진기관을 현행 등록제(일정 시설을 갖추고 등록 신청서 제출하면 인정)에서 지정.계약제로 바꾸는 건강검진법 개정안도 의원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은 "건보공단이 책임지고 정기적으로 검진기관의 질을 관리해 문제가 생기면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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