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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 안 한 곡물 전곡(全穀)

중앙일보

입력

곱게 정제된 곡물보다 식용이 불가능한 부분만 제거한 거친 상태의 곡물, 즉 전곡(全穀,whole grain)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훨씬 유익하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전곡을 즐겨 먹으면 심장병·뇌졸중 등 혈관질환은 물론 2형(성인형) 당뇨병·고혈압·비만·대장암·위암·게실염·과민성 대장 증상 등의 발병 위험이 크게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한 번에 약 30g씩 하루 세 번 전곡을 먹거나, 전체 곡물 섭취의 절반을 전곡을 통해 섭취하면 심장병·당뇨병의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며 국민에게 전곡 섭취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반 컵의 귀리, 빵 한 조각, 시리얼 플레이크 한 컵이 약 30g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곡류 중에선 현미·보리·밀·메밀·귀리·호밀·잡곡 등을 전곡으로 섭취할 수 있다.

*** 심장병.뇌졸중 등 혈관질환 예방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이영은 교수는 "전곡에는 비타민.미네랄.아미노산.식이섬유 등 필수영양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특히 항산화물질 등 생리 활성물질의 70~80%는 알곡을 싸고 있는 껍질 부위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전곡은 특히 심장병.뇌졸중.고혈압.동맥경화 등 혈관질환 예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장병 발병 위험을 낮춰 준다는 것은 3만4000명을 대상으로 9년간 실시한 미국 아이오와 여성 건강연구에서 확인됐다. 전곡을 하루 한 끼 이상 먹는 여성은 가끔 또는 일절 먹지 않는 여성에 비해 심장병 사망률이 14~19% 낮았다.

또 미국에서 전곡을 하루 2.7끼 이상 섭취한 사람(간호사 대상)은 이보다 훨씬 덜 먹는 사람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50% 감소했다. 이런 효과는 전곡의 식이섬유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을 낮추는 것과 관련이 있다.

*** 2형 당뇨병 예방.치료에도 도움

당뇨병의 예방.치료에도 전곡이 유효하다. 강남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경수 교수는 "전곡엔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되는 마그네슘.크롬.식이섬유가 풍부하다"며 "탄수화물 종류도 혈당을 서서히 올리는 복합 탄수화물이므로 당뇨병 환자에게 권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전곡은 당뇨병에 의한 심장질환도 예방한다.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학과 연구팀은 2형(성인형) 당뇨병 환자 9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통밀 등 전곡을 즐겨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이 20% 낮다고 '당뇨병 케어'지 올 2월호에 발표했다. 전곡은 당지수(GI)가 낮아 섭취 뒤 혈당을 서서히 올린다는 것이다.

*** 체중 감량, 암 예방에도 효과적

흔히 탄수화물 식품 하면 '살찌는 식품'으로 여긴다. 그러나 전곡은 예외다. 과식하지 않는 한 살이 찌지 않는다. 살 찌게 하는 탄수화물은 쿠키.빵.도넛.케이크.설탕 등 정제된 탄수화물이다. 전곡은 암 예방에도 일조한다.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전곡에 든 폴리 페놀 등 항산화물질과 식이섬유가 암 예방을 돕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장에 음식찌꺼기나 유해물질이 오래 남아 있는 것을 막아 대장암.변비.게실염 등도 예방한다"고 설명했다.

*** 식이섬유 풍부 … 과일보다 많아

전곡을 통한 식이섬유 섭취량은 채소.과일을 통해 얻는 양보다 많다. 식이섬유는 한국인에게 특히 부족한 영양소로 장 운동을 촉진하고 콜레스테롤 배설과 혈당 조절 능력을 높여 준다. 한국영양학회는 최근 "30~49세 남성은 하루 29g, 여성은 23g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권장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이를 맞추려면 아침은 수수밥, 점심은 흰쌀밥, 저녁은 보리밥을 먹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전곡은 소화가 잘 안 되는 단점이 있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황재관 교수는 "전곡은 기능성이 뛰어난 데 반해 맛이 떨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되며 가스가 잦아 노인.어린이.환자 등 소화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곡 표시 기준 마련, 섭취 권장해야

전곡을 표방한 식품이 시장에 속속 출시되자 미국 FDA는 15일 어떤 제품에 'whole grains'란 표시를 할 수 있는지 기준(초안)을 제시했다. 이 초안에 전곡 식품은 가공하지 않은 보리.옥수수.쌀.밀을 포함하는 곡물과 열매라고 정의했다. 곡물의 껍질을 벗기지 않거나 땅에 심었을 때 싹을 틔울 수 있는 상태의 곡물을 전곡으로 간주한 것. 또 통밀가루 등 갈거나 깨거나 얇게 만든 곡물의 경우 낟알 상태의 전곡과 주요 성분 비율이 동일한 것만 전곡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따라서 통밀을 10%만 함유한 빵은 '통밀빵'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와는 달리 국내엔 어떤 곡물이 전곡에 속하는지 분류 기준이 아직 없다. 정부가 나서 전곡 섭취를 적극 권장하지도 않는다. 일부 시리얼은 라벨에 '전곡'이라고 표시돼 있으나 구체적인 표시 기준도 없다. 흰 밀가루에 소량의 통밀을 섞은 빵을 '통밀빵'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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