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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로 태어나, 30년 청소" 70대 여성 노동자들의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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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청소노동자들.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최정동 기자

인천국제공항 청소노동자들.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최정동 기자

섬마을 농촌에서 태어난 하점순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17세 때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19살에 결혼한 뒤 힘든 시집살이를 하다 병까지 얻었다. 서울로 올라와 34년 동안 대기업 건물, 공공건물, 병원, 대학에서 청소노동을 했다. 퇴직 후 홀로 적은 국민연금과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깎인 기초연금으로 살고 있다.

평등노동자회가 오는 29일 발간할 예정인 70대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구술기록집 중 일부다. 이들은 노년아르바이트노조 결성을 준비하며 1년 동안 70대 노동자 9명을 인터뷰했고, 노년의 현실을 기록으로 담았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기간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한 채 농사일을 거들거나 공장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결혼 후에도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가사노동과 장사 등 힘든 노동을 감내했다. 이후 청소노동자로 일하면서 저임금과 고강도‧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유령인간 취급을 받기도 했다.

김복자씨는 태어나자마자 전쟁고아가 됐고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다 결혼 후 남편과 서울에서 함께 일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김씨는 공장, 식당에서 일하다 청소노동을 시작했다.

판잣집에 살면서 파출부 일을 했던 서미순(가명)씨는 이혼 후 청소노동을 시작했고, 퇴직 후에도 작은 건물에서 시간제 청소알바를 하고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경우도 있었다. 이창순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회사에 취업했지만 남편의 사업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청소노동을 시작했다. 남편의 빚을 갚아나갔고, 열심히 일했지만 교통사고 당한 아들의 병간호 때문에 조기 퇴직했다. 현재는 노후를 위한 보험료 등을 내기 위해 다시 청소노동을 하고 있다.

단체에 따르면 70세가 넘은 노인 10명 중 3명은 여전히 노동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70%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일한다. 허영구 노년알바노조 준비위원장은 “구술자료집은 70대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지난한 삶을 담고 있다”며 “험난했던 시대와 굴곡진 시간을 따라 인생을 ‘살아냈다’고 표현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단체는 오는 29일 전태일기념관에서 구술기록집 발간 행사를 열고 노년 알바노동자들을 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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