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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실 일 없게…” 8일의 티타임, 그날 김종인·국힘 틀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국민의힘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간의 관계가 목불인견이다. 4·7 재보선 승리 바로 다음 날 감사패와 함께 박수로 배웅했는데, 그 직후부터 “당이 아사리판”(김종인), “김종인은 뇌물 전과자”(김병준) 등 공방 수위가 다신 안 볼 지경에 이른 모양새다. 양측엔 당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①김종인 재추대론

21일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재보선을 전후해 당 일각에서 ‘김종인 재추대론’이 제기됐다고 한다. 현 체제 그대로 내년 3월 대선까지 치르자는 주장이었다. 김 전 위원장이 당 회의를 마지막으로 주재한 지난 8일 오전 당 비대위 티타임 때도 관련한 얘기가 오갔는데, 당시 상황은 이랬다.

선거 승리로 들뜬 분위기 속에 비대위원들이 “이대로 떠나시면 안 된다”고 요청하자 김 전 위원장은 말없이 웃었다. 하지만 그 직후, 주호영 당대표 대행이 당 상임고문 자리를 제안하자 김 위원장은 “관심 없다”고 잘랐다. 여기에 주 대행이 “앞으로 모실 일 없게 당이 잘하겠다”고 하자 표정이 굳어졌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당 관계자는 “좋은 취지로 자리를 제안하고 앞으로 고생시키는 일 없도록 잘하겠다고 한 건데, 자존심이 강한 김 전 위원장 입장에선 서운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월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월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②안철수 합당

김 전 위원장은 당을 떠날 즈음 주변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안 대표가 제1야당을 자신의 대선 캠프로 쓸 수 있으니, 통합론에 휩쓸리지 말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가 떠나자마자 주 대행을 중심으로 당이 합당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자 크게 실망했다는 게 김 전 위원장 측의 전언이다.

실제로 김 전 위원장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난 합당하기로 약속한 적 없다” 등 쓴소리를 쏟아내더니, 급기야 지난 20일 언론 인터뷰에선 주 대행을 겨냥해 “안철수를 서울시장 후보로 만들려고 작당했다”고 직격했다. 이에 두 사람(주호영·안철수)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월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 3월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경록 기자

③윤석열 쟁탈전

김 전 위원장의 최근 인터뷰 발언을 보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언급하며 새로운 정치 세력을 연결짓는 경우가 잦다. 지난 19일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도 내년 대선 관련 “별의 순간을 잡은 윤석열이 새 정치 세력을 갖고 출마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성공을 모델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2017년 의석은 없지만 중도 지향 세력을 표방한 신당을 만들어 집권한 마크롱 사례를 거론하는 식으로, 윤 전 총장에게 정치 진로를 코칭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을 만날 것인지 묻는 말에 대해선 수차례 “만나고는 싶지만 먼저 연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까지 김종인 전 위원장이 몇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윤 전 총장측의 반응이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이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주변에 “윤석열에 대한 유권자의 반응이 좋다. 선거 운동할 때 윤석열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좋겠다”라는 말을 했고 총선 뒤 실제로 지인을 통해 접촉을 타진했지만, “검찰총장이 야당 대표를 만나긴 어렵다”며 윤 전 총장이 주저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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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도 바빠졌다.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과 먼저 만난다면 향후 대선 정국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이에 다음 주 원내대표-이후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일정과는 별개로 ‘윤석열 당겨오기’의 물밑 작업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익명을 원한 당 관계자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윤 전 총장과 소통을 하고 있지만 당 공식 루트가 아니기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며 “당의 새 지휘부가 구성되는 대로 공식회동부터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키를 쥔 윤 전 총장은 “내가 어떻게 할지 정리가 되면 정치인을 만나겠다”(13일 언론 인터뷰)고만 밝힌 채 공개 행보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현일훈 기자 hym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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