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단독

이재명 백신 발언 2탄 "러시아산 도입 공개 검증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일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일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선에 참패하면서 여권의 눈은 이재명 경기지사에 쏠리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맞설만한 지지율을 기록 중인 여당 후보는 이 지사뿐이다. 그는 재·보선 참패 이후 12일간 침묵을 지키다 SNS에 "실용적 민생개혁 실천에 매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비문계 대표 주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며 각을 세우는 대신 정책과 행동으로 차별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그 일환으로 우선 이 지사는 러시아산 백신 도입 검토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스푸트니크 백신 검토'카드 꺼낸 이재명 단독 인터뷰 # 백신 가뭄으로 정부 코너 몰리자 # '러시아 백신' 으로 국면전환 유도 #의료계는 신중론이라 논란 여지 # 9월 경선 후 차별화 수순 나설듯

"러시아 옵션,청와대에도 건의" 
 이 지사는 지난 15일 경기도 의회 임시회의에서 "(국내에서 접종 중인 코로나 19 백신 이외에) 새롭게 다른 나라들이 개발해 접종하고 있는 백신을 경기도에서라도 독자적으로 도입해서 접종할 수 있을지를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주목을 모았다. 당장 정부는 "지자체 단위의 자율 백신 예산 편성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대권 레이스에 뛰어든 정세균 전 총리도 "지금 (이 지사가) 나서서 어디서 백신을 가져오나.실현 가능성이 없다"(19일 JTBC 뉴스룸 인터뷰)며 이 지사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 지사의 발언은 경기도가 자체 예산으로 백신을 도입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부가 러시아산 스푸트니크 V 백신 도입 가능성을 공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이 지사는 2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화이자·모더나 등 미국산 백신은 도입이 요원하고, 중국산 백신은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가운데 스푸트니크 백신은 예방 효과가 97%를 넘은 것으로 나왔다"며 "정부가 선택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스푸트니크 백신에) 공개적인 검증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 측은 이철희 신임 청와대 정무 수석을 비롯해 정부 요로에 이런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가 백신 도입 지연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대안을 찾을 운신의 폭을 넓혀주려는 취지라고 이 지사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스푸트니크 백신은 현재로썬 도입하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혈전 부작용이 드러난 아스트라제네카·얀센 백신과 같은 플랫폼인 데다 접종받은 수천만 명의 부작용 여부 정보를 러시아 정부가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정부가 이미 검토를 하고 있는데 말을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안다. 수천만 명에 접종된 결과를 최대한 파악해 안전성과 면역력 및 구매 가능성을 검증함으로써 선택의 다양성을 확보하면 화이자나 모더나 공급을 앞당기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스푸트니크 백신은 내달부터 국내에서 생산된다.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국부펀드와 스푸트니크 백신을 생산하기로 계약하고 기술 도입을 마친 지엘라파와 자회사 한국코러스가 5월부터 상업용 물량을 생산할 예정이다. 다만 이는 전량 수출용으로, 국내 사용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10월 국회를 대선 승부의 장으로"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일정은 대략 이렇다. 6월 대선 후보 예비 경선(컷오프) →7월 선거인단 등록 →8월 선거운동 → 9월 8일 이내(대선 6개월 전) 대선 후보 확정으로 돼 있다. 친문 일각에선 그동안 "국민의힘이 대선 4개월 전인 11월에 후보를 확정하는데 먼저 우리가 후보를 내 미리 야권의 집중포화를 당할 필요가 없다"며 경선 연기론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지사측은 당헌·당규대로 9월 8일안에 경선을 치러 대선 주자를 확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는 민주당이 4·7 재·보선에서 참패하면서 더욱 강화됐다.
 이 지사의 측근은 "부동산·코로나 등 정책면에서 여당의 무능이 참패의 핵심 원인인 만큼 대선 직전 여당 후보가 공약을 내봤자 먹히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 지사는 9월 초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한 달간 준비를 거쳐 10월 정기국회에서 부동산 등 시급한 민생 입법을 통과시켜 공약을 '행동'으로 제시한다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 정쟁성 입법은 피해 야당도 따라오게 하여 통과율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이 측근은 "이 지사가 '실용적 민생 개혁'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는데 마침 최근 지명된 김부겸 총리 후보와 이철희 정무수석도 같은 노선의 정치인들인 만큼 10월 국회에서 이재명 대선 후보 주도 아래 당·정·청이 호흡을 맞추기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청, 국무회의 배석 약속 지켜야" 
2019년 5월 18일 광주 5·18 기념식에서 강기정 당시 정무수석은 이 지사에게 "앞으로 경기도와 관련된 사안이 있으면 국무회의에 배석하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2년이 다 된 지금까지 이 지사의 배석은 이뤄지지 않아 "청와대가 입장을 뒤집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치권에선 "친문 세력이 이 지사의 배석을 막은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이 지사 측근인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경기도는 서울보다 4백만명 많은 1300만명이 사는 전국 최대 지자체로 3기 신도시 8곳 중 7곳이 속해있는데 그동안 서울시장만 배석 권한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최대 난제인 코로나·부동산을 비롯해 모든 중요 정책이 집행되는 국무회의에 이 지사가 배석하도록 청와대가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난제들이 유기적으로 해결될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했다.

문파 vs. 중도 표 딜레마 
 그러나 9월 경선 전까지는 문 대통령과 각 세우기를 피하고 정책으로 승부한다는 시나리오에 비판도 나온다. 민주당의 비문계 중진 의원은 "이낙연 전 총리로부터 이탈한 친문 표가 이 지사에게 가지 않아 지지율이 20% 선에 고착돼 있다"고 했다. 그는 "친문의 비토가 워낙 강하다. 이 지사가 친문 표 얻겠다고 정권 비판을 자제해봤자 친문들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이 지사를 지지해온 중도 표마저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신 현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며 윤석열 전 총장이 가져간 중도 표를 뺏어야 이 지사에게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 K 연구소장은 "이 지사의 지지율은 견고하지만 고착된 상태"라면서 "집토끼인 민주당 핵심 지지층을 확실히 붙잡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의 분석이다. "이 지사는 호남과 30대 및 '문파'(문 대통령 열혈 지지층)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남북관계 같은 민주당의 핵심 이슈에 명확한 입장 표명을 미루고 줄타기를 해온 탓으로 보인다. 문파를 잡겠다고 조국 전 장관을 응원할 필요는 없지만, 검찰개혁이나 햇볕정책 등엔 합리적인 지지 입장을 밝혀 '민주당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줘야 지지율이 30% 중반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에 맞서는 여권 잠룡들

이재명 경기지사가 침묵하는 사이 그에 맞선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우선 민주당내 주류인 친문 세력은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원조 친노’에다 조국 사태 때 적극적인 지원 발언으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에서 인기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이사장은 최근 “장난감 취급 말라”며 출마설을 일축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유 이사장은 올해 초부터 불출마 의사가 분명했다. 그런데도 친문들이 자꾸 출마설을 퍼뜨리자 다음 달부터 점화될 대선 경선 정국을 앞두고 공개 정리한 것”이라 분석했다.

출마설이 나돌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때 밀었던 우상호 의원이 패배한 데 이어, 박영선 후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전 시장 메시지를 연달아 낸 것이 여론의 반발을 사자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이낙연 전 대표에 이어 정세균 전 총리가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추미애 전 법무장관도 ‘친문 팬덤’을 엎고 출마를 준비중이란 전언이 많다.

‘원조 친노’인 이광재 의원과 ‘리틀 노무현’ 김두관 의원의 출마 의욕도 강하다. 최문순 강원지사와 양승조 충남지사도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치며 몸풀기에 나섰다. 다만 양 지사는 대선 후보 출마 이력을 무기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 재선에 도전하려는 의중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86 정치 청산’을 외치는 70년대생 박용진 의원도 대권 도전 의사를 비치고 있다. 정권에 대고 직언해 온 개혁 이미지가 그의 자산이다.